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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23. 2023

알콜중독, 첫 상담


"내가 볼 때 너는 알콜중독이 맞는 것 같아. 진지하게 상담 한 번 받아보는 거 어때?"


대학 동기 모임에서, 한 친구가 진지하게 정신과 상담을 권했다. 그동안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실체가 없어 답답했던 내 문제가 구체화되는 순간이었다. 제삼자의 눈으로 볼 때 난 그렇구나, 깨달았다. 


원래도 많았던 술자리는 국정감사 전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1월부터는 송년회가 두 달이나 이어졌다. 술자리를 일주일에 최대 세 번으로 조절하려 했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만나야 할 사람은 너무 많았고 그동안 미뤄온 술자리도 많았다. 12월에는 너무 바빠 1차와 2차 술자리를 다른 사람들로 채우거나, 낮술을 포함해 하루에 술자리를 세 번 뛴 경우도 있었다. 


거기에 회사 동기 모임, 선후배 모임, 대학교 모임, 고등학교 모임, 전 회사 동기 모임 등 개인적인 자리가 겹치며 어느새 술자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올라왔다. 하루종일 사람만 만나다 퇴근하면 진이 빠졌다. 정신과에서 상담 한 번 받아보라는 친구의 조언은 당시 내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내가 알콜중독이라는 걸 깨달았고, 약물치료가 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다만 정신과를 찾는 데 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일 때문이었다. 일을 하기 위해선 술을 마셔야 했기 때문에 알콜중독인 걸 알면서도 술을 끊을 수 없었다. 친구가 정신과를 권유한 뒤 한 달이 지나서야 병원을 찾았다. 



일이 곧 술, 술이 곧 일?


3년쯤 전, 불면증으로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과거 진료 기록을 가지고 있고, 내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곳은 이전에 다녔던 정신과일 거라고 생각해 병원을 고르는 데에는 큰 고민이 없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정신과는 마치 어제 갔던 것처럼 익숙했고,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불면증 때문에 다시 병원을 찾은 줄 알았던 선생님은 내가 "알콜중독"을 언급하니 꽤 놀라셨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고, 의지를 갖고 병원을 찾았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난 원래도 술을 좋아하고, 술자리도 많은 편이긴 했다. 숙취가 없어 마음 놓고 술 마시는 일이 잦았다. 대학시절 내일 없이 술 마시는 학생으로 유명했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는 집에서 양주를 쌓아놓고 마시곤 했다. 다만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마시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회사에 있다고 거의 확신한다. 술 잘 마시는 게 곧 능력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과도한 욕심, 술 좋아하는 성격이 복합적으로 맞물렸다. 


의사 선생님은 약물치료도 중요하지만, 알콜중독의 핵심은 곧 단주에 대한 의지라고 강조했다. 술이 일단 들어가면 스스로를 컨트롤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예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아무리 약물치료를 병행한다고 해도 내가 그냥 술을 많이 마셔버리면 소용이 없다고 하셨다. 


첫 상담을 마친 후 다이어리를 살펴봤다. 12월, 1월, 2월 세 달치 술약속이 이미 꽉 차 있었다. 이 중 일정을 조절할 수 있는 약속은 단 하나도 없었다. 과연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을까? 약을 먹는 게 도움이 될까? 간만 더 망가지는 건 아닐까?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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