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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24. 2023

술 권하는 사회, 기자로 살아남기

마시고 싶어 마시는 게 아니다



"아쉽긴 한데 잘 생각했네. 그래, 이거 건강에 좋을 게 뭐 있어."


2022년에는 담배를 끊었다. 대학시절 술 마실 때면 종종 피우던 담배는 기자생활을 시작한 후 본격적인 친구가 됐다. 혈연, 지연, 학연 중 최고는 흡연이라고 다른 기자들이나 취재원과 관계를 쌓는 데 흡연만큼 편리한 게 없었다. 같은 팀 선배들과도 함께 담배를 피우며 친목을 다지곤 했다. 


금연하겠다고 밝히니 주위에서 응원이 쏟아졌다. 함께 담배를 피우러 가지 못해 아쉽다는 기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담배에 지지 말고 꼭 금연에 성공하라고 격려를 보냈다. 금연보조제를 선물해 준 분도 있었다. 


알콜중독 첫 번째 상담을 마치고 회사에 금주 소식을 알렸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금주도 아니었다. 건강 문제로 앞으로는 술을 줄이겠다고 했더니, 가장 처음 돌아온 말은 이거였다. 



대체 왜 술을 끊어?


담배와 술이 건강에 나쁘다는 건 모두 아는 사실이다. 담배와 술이 나의 건강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도 상식이다. 간접흡연으로 인한 사회적 피해만큼 술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사고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어찌 보면 담배보다 술이 사회적으로 더 문제일 수 있다. 그럼에도 금연과 금주를 대하는 사회적인 시선에는 꽤 큰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술은 단순히 취하기 위해 마시는 음료가 아니다. 술은 타인과의 관계를 다지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실 때보다 술을 마실 때 절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술을 끊지 말아 달라는 회사의 부탁이 그리 이상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담배는 끊어도 취재에 지장이 없지만, 술은 있기 때문이다. 


소주는 필연적으로 음식을 동반한다. 아주 가벼운 안주부터 시작해 회나 고기와 같은 무거운 식사까지 무언가 함께 곁들여 먹어야 한다. 술을 동반하는 저녁 미팅은 오후 6시부터 시작될 때가 많은데, 밥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고기나 회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 타인이 최소 1시간 이상은 시간을 내어준다는 뜻이다. 



점심과 저녁


기자들은 취재원과 만나기 위해 다양한 방면으로 시간을 낸다. 점심 미팅과 저녁 미팅, 티 미팅이 대표적이다. 점심시간에 만나는 취재원과는 아주 길게 만나야 2시간이다. 모두가 직장인인 만큼 더 많은 시간을 빼기가 어렵다. 오전에 업무를 처리하고 11시 반쯤 만나면 1시 반에는 헤어져야 오후에 또 기사를 쓸 수 있다. 취재원도 그쯤에는 헤어져야 오후에 정상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저녁 미팅은 다르다. 이미 그날 기사를 마감하고, 상대방도 업무를 어느 정도 마무리 지은 상태로 만난다. 저녁 식사는 대개 술을 동반하기 때문에 1차만 하고 끝낸다 해도 최소 2시간 이상은 볼 수 있다. 만약 그 자리가 즐거워 2차, 3차까지 이어진다면 취재원과 함께하는 시간은 더 길어지는 셈이다. 


지금 회사로 이직한 후, 거의 매일 저녁 미팅을 가졌다. 술 마시는 게 즐거워서는 당연히 아니었다. 그만큼 만나고 인사해야 할 사람이 많았고, 한 차례 인사를 마친 뒤에는 날 소개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쩌면 저녁 미팅은 야근이나 다름없는데 그럼에도 계속해서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셨던 건 그만큼 업계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이 컸기 때문이다. 


아마 기자가 아니더라도 사람을 대하는 직무라면 모두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을 것 같다. 과연 술 없이도 친밀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 물론 주변에 술 없이도 좋은 기사를 쓰고, 취재원과 친밀감을 쌓는 기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케이스가 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점심 미팅 없이 저녁 미팅으로만 스케줄을 가득 채우는 게 그만큼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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