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리터리맘 Jan 25. 2021

군화를 숨기고싶어 하는아이들의 엄마이자 군인

저는 군화를 숨기고싶어 하는 아이들의엄마이자 군인,밀리터리맘입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군인이다. 그리고 여자이고, 또한 다자녀의 엄마이기도 하다. 여군이 되겠다는 꿈을 꾸며 군에 지원할 때에는 압도적으로 많은 남성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있을까 하는 의문과 두려움을 품고 고민을 한다. 하지만 이런 내적 두려움을 극복하고 여군이 된 후에는 또 다른 갈등에 봉착하게 된다. 결혼과 출산을 놓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보다 조금 앞선 세대의 부모님들은 결혼과 출산이 선택의 문제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우리 세대에게는 중차대한 고민거리 중 하나이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한 삶을 살면서 동시에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로서 잘 살아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다.


어쩌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었던 결혼과 출산이 할지 말지 선택을 놓고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을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높아지면서 저변에 감춰져 있던 일하는 엄마들의 애환이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기성세대의 여성 즉 우리의 부모님들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되고 오로지 가정을 위해 희생하면서 살아온 삶을 안타까워하며 동일한 과정을 반복하라고 하고 싶지 않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만큼 일과 양육을 같이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군들은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일반 회사와는 다른 특수한 근무환경과 예측이 불가능한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전전긍긍하는 일이 훨씬 더 많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정한 시간에 출근과 퇴근을 할 수도 없고, 한 곳에 머물며 안정된 생활을 할 수도 없다. 비상상황 발생으로 급작스럽게 소집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훈련이나 국가적 위기 등 불안정한 안보상황으로 장시간 집을 비워야 하는 것이 일상인 곳이 바로 군대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올바른 직장생활과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답은 부정적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즉, 배우자나 부모님, 보육도우미나 시설 등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나는 사실 지독한 독신주의자였다. 이유 중 하나는 성장환경에서 바라본 엄마의 모습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적어도 내 눈에 비친 엄마는 본인의 인생을 산 적이 없다. 오로지 가정을 지키고 자녀의 공부와 성장을 위해 무한 희생을 하는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그런 희생이 자녀들을 자라게 한다고 믿고 살아온 분이다. 그래서 젊은 시절을 잃어버린 우리의 부모님들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런 내가 다자녀의 엄마가 되었다. 물론 철저한 가족계획에 의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당황도했지만 하늘이 주신 선물들의 서툰 엄마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임신을 한 후에 그 사실을 직장에 알리는 것부터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고 출산휴가는 그렇다 치더라도 육아휴직은 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직장에 소홀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그래서 나는 다자녀를 출산하면서도 단 6개월간의 휴직이 전부이다. 


100일도 되지 않은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길 용기가 없어 부모님들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고,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출근할 때마다 현관문을 가로막아 서고는 눈물을 터트리는 아이들 때문에 출근길은 항상 눈물바다였다. 그리고 부모님이 힘들어 양육을 못 도와주시게 되면 집에 상주하며 양육을 돕는 보육도우미를 구해야 했다. 이도 어려운데 이사가 잦다 보니 옮겨 다닐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구하거나 아니면 기존 사람에게 차비와 수고비까지 더 주고 고용을 해야 했다. 결국 나의 월급은 고스란히 보육도우미에게 옮겨가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경력단절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은 친정어머니가 양육을 도와주고 있다. 결국 희생의 아이콘인 엄마는 손자 손녀까지 돌봐주시면서 생의 후반부를 살아가고 계신다. 너무나 죄송스럽지만 직장에서 인정받고 상위로 진출하는 것만이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 여기고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떠 한가? 10여 년 전 내가 가정을 이루었을 시기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언제부터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높아지면서 ‘결혼과 출산을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 유능한 여성들이 사회적 역할을 지속하게 하면서 결혼과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일과 가정의 양립’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몸과 마음이 고달프지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사실 정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회적 인식이다. 예전처럼 주변 남성 동료들이 면전에서 싫은 표정을 짓는다 거나 임신과 출산을 감안해 함께 근무하기를 꺼리고 중요 직책에 갈 기회마저 배제시키지는 않는다. 물론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사회적인 큰 흐름은 일하는 엄마들이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군은 어떠 한가? 군에도 예전에는 예측할 수 없었을 만큼의 엄청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여성들의 비율뿐만 아니라 지위나 직책의 중요도도 날로 높아져 가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병역 감소’라는 사회적 문제는 군내 여성 진출의 불가피함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여군들이 군 생활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들도 지속적으로 보완 중이다.


밀리터리 맘으로 과도기적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같은 문제나 상황으로 힘들어하거나 망설이고 주저하는 이들에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이다. 나의 힘들었던 과거는 위로의 메시지가 될 것이고,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얘기는 희망의 씨앗이 되어 도전의 기회로 연결될 것이라 믿는다


또한, 하루하루를 전쟁하듯 살아오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뒤를 돌아보니 ‘아~ 그때 그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하는 아쉬움과 ‘이건 꼭 알았으면 싶다’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은 고민을 안고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미리 귀띔해 주려고 한다. 지금의 나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풍요롭고 건강하며 희망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인생 선배의 애정 어린 오지랖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