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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춤 Oct 21. 2023

05 완벽했던 여행이 부서질 때

D+60 체코 프라하. 낭만에서 빠져나오다

돌이켜보면 나의 여행은 낭만여행이었다.

길 위에서 이유 없이 당당했고 행복했다.

가진   어깨에 짊어진 배낭이 다였지만 덤터기를 당하거나, 길을 헤매며 하루의 계획을 망쳐버려도  어때, 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너무 좋아. 여행하면서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이었다.

비가  흐릿한 날씨에 꾸리꾸리한 야경이 있을지라도 이어폰 귀에 꽂고 홀로 가만히 찬바람 맞으며  있었다. 함께 우산 쓰고 걸어가는 연인 보며,  낭만적이다.라는 말이 나왔다. 찝찝하게 젖은 운동화도 왠지 맘에 들었다. 사람 없는 한적한 거리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캔디였고. 마음껏 주인공 행세를 즐겼다.


여행을 하며 나라는 등장인물의 설정값에 좋다는   갖다 붙였다. 그게  여행이었고, 행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동화만을 꿈꿨고, 주인공만을 꿈꿨다. 상황이 이렇든 저렇든. 내가 어디에 있고  하고 있든 행복한 사람.


유럽에 와서 엄마와 이모를 만나 함께 여행을 했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만나고 느꼈다. 동양인이기 때문에 겪는 직원의 불친절한 태도. 주어진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까  오는 약간의 스트레스. 피로감.

예약해야 하는 다음 숙소와 다음 기차와 다음 투어.

그런 사소하고도 일상적인 '현실' 느껴졌다. 그리곤 허무하게도 너무나 손쉽게 나를 낭만에서 꺼내버렸다.


낭만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현실로 넘어가는 순간 울적해져 버린다. 낭만  나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이고 행복한데, 현실의 나는 예민하고, 자주 한숨을 쉬고, 미간을 찌푸리기 일쑤다.


나는 홀로 여행을 하면서 극도로 행복해졌었다.

그렇다면 나의 여행은 현실도피였을까.


이름도 예뻤던 이탈리아 나폴리 '라벨로'
이탈리아 포지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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