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0 프랑스 파리. 옆자리 흑인이 말을 걸었다
40일 간 인도의 여행을 마치고 뭄바이에서 파리로 넘어왔다. 파리는 그다지 깨끗한 도시는 아니지만, 인도서 한 달을 넘게 지내고 넘어온 내게는 깨끗하고 발전된 문명처럼 느껴졌다. 3월 초 파리의 날씨는 오락가락했다. 흐렸다가 맑았다가. 비바람 몰아쳤다가 잠깐 따뜻했다가. 하루 이틀 정도 신나서 파리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어제 루브르 박물관 줄을 비 맞으며 기다린 탓이었을까. 괜히 몸살 기운도 나는 것 같고 날도 흐려서 나가기가 싫어졌다. 한인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의 2층 침대 위칸에서 새하얀 이불을 뒤집어쓰고 뒹굴댔다. 그렇게 늦은 오후가 되자 '그래 파리까지 왔는데...'라고 아쉬운 생각이 들었고, 마침 배도 고파 근처라도 잠깐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정한 오늘 할 일은 딱 세 개뿐이었다. 이어폰 사기. 빨래방에 빨래 맡기기. 그 옆집 케밥가게서 점심 겸 저녁 먹기
축축이 젖은 빨래 더미를 다시 건조 모드로 돌려놓고 바로 옆 케밥 가게로 돌아왔다. 적당한 가격의 케밥을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옆에 흑인 아저씨도 나처럼 늦은 점심인지 이른 저녁일지 모를 케밥을 혼자 먹고 있었다. 웨얼 얼유 프롬.을 시작으로 얘기를 트게 됐다. 아저씨와 영어로 대화를 하는데 대화가 잘 통하지는 않았다. 나도 영어를 썩 잘하지 않는데 아저씨는 더 못하는 거 같다. 누가 더 못하는지 모를 영어로 적당한 알아듣 척 스킬을 섞어 대화를 이어갔다.
친절한 옆자리 아저씨는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왔고 이곳 약국에서 일한다 했다. 나는 다음 달 아프리카 여행을 할 거라고 주저리주저리 말했고 동아프리카를 갈 건데 서아프리카도 가고 싶다고 했다. (아저씨가 서아프리카 사니까 하는 인사치레였다) 어제 에펠 타워를 봤는데 너무 추웠다고 또 주저리주저리 말하다가. 오늘 이어폰이 고장 나서 지하철 노점상에서 샀는데 5유로를 부른 걸 3유로에 샀다고 또 떠들어댔다. 파리에 와서 혼자 돌아다니다가, 오늘도 혼자 방에만 있었다 보니 말문이 트였나 보다. 프랑스어가 1도 안 되는 나와 영어가 잘 안 되는 아저씨와 대화를 하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지폐 한 장을 꺼내 나에게 조심스레 건넸다.
내가 와이? 노노 이러니까. 내가 투어리스트라 돈이 없을 거라고 이 돈을 가지라고 했다. 맞다 ㅋㅋ 나는 돈이 없다. 아저씨는 아마 이어폰을 3유로에 사고 좋아하는 나를, 맨투맨 달랑 입고 케밥을 혼자 먹는 내가 뭐랄까 기특했던 것 같다. 몇 번이나 조심스레 건넸지만 거절했고 케밥을 먼저 클리어한 나는 메르시.(감사합니다) 라는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프랑스어를 외치고 자리에 일어섰다.
가게를 나오자 파리의 날씨는 다시 좋아졌고
바람이 차지 않았다.
마음이 따뜻해져서 그런가.
맞다. 내 여행의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