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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춤 Oct 21. 2023

06 한 달 있을 생각은 없었는데

D+100 이집트 다합

이집트 카이로에서 떨어진 도시 '다합'  달째 머무르고 있는 중이다. 푸른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 다합은 스쿠버의 성지, 여행자들의 블랙홀로 불리는 곳이다.


나는 이집트 수도 '카이로' 아웃티켓을 끊어놓은 상황이었다. 다합에서 최대한 머물고 싶었기에, 출국 하루 전쯤에나 카이로로  계획이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재외국민 투표 일정이 비행기 출국일 보다 3 앞이었다. ( 손으로 뽑는  대통령 투표기에  참여하고 싶었다) 투표는 카이로에서 해야 하는데 투표 날짜와 출국 날짜 사이에 갭이 생겨버렸다. 비행기표를 끊을  투표 날짜를 고려하지 못했던 탓이다. 카이로 - 다합 버스 구간은 평균 8시간이 걸린다. 주위 사람들은 그냥 투표를 포기하고 다합에  있다가 출국 날짜에 맞춰 떠나라,  하거나 투표하러  김에 카이로 가서 며칠 쉬다가 출국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29일 밤에 버스를 타고 카이로로 가서 30일 오전 투표를 한 후 다시 당일 밤 버스를 타고 다합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그리곤 다합서 이틀 밤을 더 잔 후 다시 카이로로 가서 출국하기로 결정했다.


투표를 포기하면 두고두고 후회가 남을 거 같아서였고, 다합을 굳이 다시 돌아와 이틀 밤을 자기로 결정한 건 '미련'때문이었다. 갑작스럽게 다합을 떠나는 것이 도저히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합에서 카이로. 투표하러 가던 차 안


사실, 처음엔 다합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날씨도 좋고 물가도 싸고 다이빙도 신기하고 재밌었는데, 왜인지 인도만큼 정이 가지 않았다. 다합은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에 꼭 봐야 할 것, 해봐야 할 것, 먹어봐야 할 것 이런 게 없었다. 그런데 다합에 있는 한국인 여행자들은 다 저마다의 일상이 있었고 그게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와 대비된 나의 모습이 스스로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들의 친밀함과 편안함을 의심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렀다.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오늘 뭐 하지, 오늘 뭐 먹지 하는 별 의미 없다 생각했던 것들이 바로 다합의 할 거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아침에 라면 끓여 밥 말아먹고, 점심에 수영하고, 저녁에 장 봐서 밥 해 먹고 술 마시는 그런 별거 없는 생활이 전에는 다소 무의미하고 특별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놀고먹는 게 무슨 의미람. 나는 어쩌면 계속 여행을 하면서 뭔가를 쌓아내려고만 했는지 모르겠다. 이런 경험, 저런 경험. 뭐라도 하나 남는 게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다합에서 비워내는 연습을 하는 거 같다. 아 이렇게 소소한 일상만으로 지내도 충분히 의미 있고 좋아. 이게 행복인 거 같아.라고


나는 그냥 너무 좋아진 거다.


샨티유 카페에 들어서면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건네는 안녕하세요 소리, 낚시하며 보트에 누워 찾는 북두칠성, 트럭 택시 뒤에 옹기종기 앉아 가며 맞는 세찬 밤바람, 라이트하우스의 파도소리, 샨티유의 음료 한잔, 650원짜리 점심 코샤리, 술자리의 카드게임, 저마다의 이야기, 누군가 해주는 음식.


고작 며칠 뒤에 이 모든 걸 떠나보낸다 하니 그 어떤 여행 보다도 미련이 남는다. 잘 마무리하고 싶다.


샨티유 카페에서 바라보던 다합의 푸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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