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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춤 Oct 21. 2023

07 나를 펑펑 울린 러브레터

D+120 케냐 키갈리

Bg. 이렇게 우리 - 백아연


케냐의 키갈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3주간의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시골 초등학교의 일손을 돕고, 장애아동 생활시설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았다.


점심을 먹고   2시가 조금 넘는 시간이었다. 학교 쉬는 시간을 틈타 카롤 찾아왔다. 카롤은 유독 나를 따르던 8학년 소녀였다. 학교에서 나를 보면 먼저 다가오는 나를 너무나 좋아해  친구였다.


마당 옆의 낮은 턱에 주저앉아 잠시 쉬고 있었는데, 카롤이  옆에 따라 앉았다.  그렇듯 우리는 맘보(안녕, 어때?) 포아(좋아) 인사하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이제 무얼  건지, 교실로 언제 돌아가는지. 매일 비슷한 질문과 대답을 지겹지 않다는  정답게 주고받았다. 나는 종종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영어도  못하는 내가   있는 것은 고작 잡은 손을 흔들어주거나, 하이파이브를 하는 정도의 손장난이 다였다.


함께 봉사한 친구들과 트레킹

잠시  카롤은 주머니에서 주섬 주섬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꺼내보인  안엔 종이  장이 있었는데, 그중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장을 꺼내더니 나는   없게 종이를 살짝 펴서 읽기 시작했다.


그녀가 감춘 종이가 무엇인지 물었다. 쑥스러운 듯이 망설이더니 이내 두 손으로 종이를 조심스럽게 나를 향해 펼쳤다. 자기 코앞에 종이를 들며 얼굴을 가리는 그녀의 이상한 행동이 귀엽다고 생각하며 종이에 쓰인 글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I miss mum, 이라고 빨간색으로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쓴 글이었다. 편지를 읽으며  끝이 찡해지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도 모르게 갑자기 차오르는 눈물을 막으려고 입을  다물었는데 편지 뒤의 카롤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참으려고 했는데 참지 못하고 울어버렸다


I miss mum
A thousand words could not bring you back. I know because I tried. A thousand tears could not bring you back. I know because I cried.
천 마디의 말로는 당신을 되찾을 수 없어요. 노력해서 알아요. 천 마디의 눈물로도 당신을 되찾을 수 없어요. 노력해서 알아요.

I really miss you mum, tell me. I miss you mum, Although your soul is at rest and your body free from pain. The world would be like heaven if I had you back again.
비록 영혼은 안정되어 있고 몸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있지만 다시 당신이 돌아온다면 세상은 천국과 같을 것입니다.

You’re always in my thoughts no matter where I go. Always in my heart, because I loved you so much. However long my life mights last, wahtever land I view, Whatever joy or grief is mine, I still remember you
당신은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항상 내 마음속에 있어요. 내 삶이 얼마나 오래갈지, 내가 어떤 땅을 보든, 어떤 기쁨이든 슬픔이든, 나는 여전히 당신을 기억해요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그녀와 함께했던 일주일 남짓의 지난 시간이 우리 사이에 무엇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며칠 전 카롤은 물었다. 이곳에 언제까지 있는지. 나는 다음 주에 떠난다고 답했다. 다음 날 카롤은 물었다. 케냐에 더 오래 있으면 안 되는지. 나는 한국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다음 날 때쯤 카롤은 또 물었다. 왜 한국으로 가야 하는지.. 나는 한국에 가서 공부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어제저녁 나를 찾아온 카롤은 망설이다가 자기와 여기서 살면 안 되냐고 물었다. 나를 자꾸 붙잡으려 하는 카롤에게 한국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에 또 케냐에 올 거냐는 묻는 말에, 그렇다고 답하지 못했고, 우리에겐 아직 일주일이 남았다고 그녀를 달랬다. 그리고 카롤은 오늘 나에게 그 쪽지를 전해줬다.


나는 그 종이가 언제부터 그녀의 주머니에 있었는지, 그녀가 나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리고 전해주기 위해 얼마나 망설였을지 잘 상상되지 않았다. 카롤을 떠올리면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 감정을 뭐라고 정의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알 수 없는 형태로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얼마의 시간을 같이 보내야 서로를 정들게 하고,
얼마만큼의 대화를 나눠야 서로를 잘 알게 되고,
얼마만큼의 감정을 공유해야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지 나는 모르겠다.


내가 카롤과 함께한 시간과 대화와 감정이 과연 얼마나. 였기에 나는 이 휘몰아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카롤의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에서 그리고 그녀의 편지에서 느껴지는 그 작고 소중한 진심이 너무나 또렷해서 나는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케냐 작은 마을의 카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케냐 국기가 담긴 팔찌
카롤이 써준 잊지 못할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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