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0 체코 프라하. 낭만에서 빠져나오다
돌이켜보면 나의 여행은 낭만여행이었다.
길 위에서 이유 없이 당당했고 행복했다.
가진 건 두 어깨에 짊어진 배낭이 다였지만 덤터기를 당하거나, 길을 헤매며 하루의 계획을 망쳐버려도 뭐 어때, 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너무 좋아. 여행하면서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이었다.
비가 와 흐릿한 날씨에 꾸리꾸리한 야경이 있을지라도 이어폰 귀에 꽂고 홀로 가만히 찬바람 맞으며 서 있었다. 함께 우산 쓰고 걸어가는 연인 보며, 아 낭만적이다.라는 말이 나왔다. 찝찝하게 젖은 운동화도 왠지 맘에 들었다. 사람 없는 한적한 거리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캔디였고. 마음껏 주인공 행세를 즐겼다.
여행을 하며 나라는 등장인물의 설정값에 좋다는 건 다 갖다 붙였다. 그게 내 여행이었고, 행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동화만을 꿈꿨고, 주인공만을 꿈꿨다. 상황이 이렇든 저렇든. 내가 어디에 있고 뭘 하고 있든 행복한 사람.
유럽에 와서 엄마와 이모를 만나 함께 여행을 했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만나고 느꼈다. 동양인이기 때문에 겪는 직원의 불친절한 태도. 주어진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까 봐 오는 약간의 스트레스. 피로감.
예약해야 하는 다음 숙소와 다음 기차와 다음 투어.
그런 사소하고도 일상적인 '현실'이 느껴졌다. 그리곤 허무하게도 너무나 손쉽게 나를 낭만에서 꺼내버렸다.
낭만에 푹 빠져있다가 갑자기 현실로 넘어가는 순간 울적해져 버린다. 낭만 속 나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이고 행복한데, 현실의 나는 예민하고, 자주 한숨을 쉬고, 미간을 찌푸리기 일쑤다.
나는 홀로 여행을 하면서 극도로 행복해졌었다.
그렇다면 나의 여행은 현실도피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