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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Dec 21. 2023

남미여행일기 25

25.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는 슬프다..

12. 19. 화, 여행 26일차,

12:30분, 비행기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착륙하려고 내려가고 있다....


드디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해서 공항을 벗어나 시내 호텔에 들어가니 오후 3시가 되었다.


무사히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지만.. 공항 노숙을 해서 피곤한데다, 여행이 어긋나버린 실망감으로 인해 다들 마음이 심란했다.


게다가 같이  타고 오는 택시 안에서 얼핏 내일 리오데자네이로행 비행기편을 우리가 부담해야한다는 식으로 루가 말했기에 내 기분은 더 엉망이 되었다.

(전체 인원이 10명이라, 일행끼리 묶어 택시를 타는데 다른 팀이 4명, 3명이라 둘이 타는 택시에 가이드가 함께 탔던 것..)


손해배상을 받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우리 더러 돈을 내라고? 설마...


우선 가이드를 따라  명동과 같은 번화가인 플로리다 거리로 나 거기서 각자 팀별로 흩어져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남미에서는 유심(Three심)이 잘 터지지 않아 네비게이션을 사용할 수 없기에,

우리는 플로리다 거리를 거슬러와서 호텔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비페 데 초리조를 먹었다.


맛은 그저 그랬는데 전날 우수아이아 공항에서 시원찮게 저녁을 먹고 난 뒤라 그저 감사히 먹을 수 있었다. 구운 등심 감자 튀김 양이 너무 많아서 저녁은 요구르트만 사다먹고 건너뛰기로 했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셨더니 취기가 올라왔다.

 (남미에 와서 음료로 물 대신 와인 한병을 시키게 되니 자주 마실 수밖에 없다...)


자꾸 하품이 나는 까닭은 술 마신 탓도 있지만 전날 공항서 쪽잠을 잔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긴장이 풀리면서 전신이 허물어지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우울한 기분은 가시지 않는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둘러볼 시간도 없이 우리는 내일 리오로 가야한다...


여행에서 되돌아가는 국제선 비행기를 안전하게 타기 위한 조처로 일단, 리오로 가는 것만이 우선이라고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저녁 7시,

남편과 나는 호텔 측에 탱고를 구경하고 싶다고 문의했다. 10개가 족히 넘는 탱고 공연 중 공연장이 작은 곳을 찾는데, 남미 안내 책자에서 봤던 오메로 만시가 눈에 띄었다.


전체 공연료가 50,000페소로 다른데 비해서 비교적 쌌다.

호텔 직원에게 식사없는 솔로 공연은 얼마냐?고 물었다. 검색을 끝낸 직원이 3만  페소란다.


나는 좋은 위치에서 공연을 잘 보고싶다고 특별히 강조했다.


공연 선정이 완료되고 돈을 지불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연 신청이 늦었기에 애매해진  픽업까지 제대로 될 수 있게 하려고 직원이 애를 쓰느라 그런 것이었다.


7:20분, 픽업시간 8시부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앞집 가게로 가서 요구르트와 사과를 사서, 부지런히 호텔로 돌아와 먹었다.


8시부터 호텔 로비에 앉아 차가 오길 기다렸다. 기다리며 생각하니 되돌아오는 차는 어떻게 식별하지? 심야인데... 물어보려고 보니, 공연을 예약해 준 직원이 보이지 않는다... 침이 꼴깍 넘어 갔다.


8: 30분이 다 되어갈 즈음 직원이 나타나서는 우릴 택시로 안내했다. 엉겹결에 택시에 탔다.


운전사가 하염없이 거리를 달린다. 공항 들어 올때 처럼 멀게 느껴진 곳에 택시는 섰다. 건너편에 오메로 만시가 보인다.


나는 공연 끝난 후엔 어디서 만나냐?고 물었다. 그는 영어를 몰랐다. 그래도 손짓발짓 왔다갔다 하다보니 그가 알아들었는 지 종이에다 뭐라고 적어준다.


고맙다고 인사한 후, 우리는 그 종이를 들고 가서 만시의 직원에게 내밀었다.

직원은 예약 리스트에 체크를 하더니 알겠다고 했다.


9시가 넘어...

자리로 안내되어 갔는데 무대 근처 중앙 좌석이다. 우리보다 앞 좌석에는 사람이 오지 않았다...


뭘 시키라는 직원이 안내에 따라, 할 수 없이 와인 한병과 물 한병을 시켰다.

(퍼 펙또..)라고 말하는 직원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와인을 시켰기에 망정이지 공연을 시작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낮에 마신 술탓인지, 값싼 와인을 시켜서인지 유난히 독하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오늘은 당신이 나를 즐겁게 해 줘. 재미난 얘기 좀 해봐요

...

남편이 그저 희미하게 웃는다.


야금야금 물과 와인을 홀짝이며 주위를 돌아본다.


빨간 타이를 멘, 많은 직원이 홀 서빙을 받느라 왔다갔다하고, 2/3쯤 찬 홀 안이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듯 후레시를 터뜨려도 오메로 만시는 어딘 가 꽤죄죄한 노인처럼 늙어보인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스탠드에 불이 들어 왔다.

10시, 공연이 시작 되었다.



처음에 세 팀이 나와서 멋들어지게 스텝을 밟았다...


아코디언 비슷한 반도네온의 구슬픈 저음이 목구멍을 따라 내 안으로 어둡게 흘러 들어온다...


탱고는 열정적이고 육감적으로 그러면서도 슬프게 다가왔다.


가수가 노래하는 순서가 되자, 나이 든 백발의 노신사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열정을 다해 노래한다...


나는 눈을 깜박이며 들으려고 애를 쓴다.

저 분과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이렇게 좋은 앞 자리에서 졸면 안 된다고 무진 애를 쓰다.


여가수는 모습을 돋보이게 하느라 가슴을 쥐어짰는데 그 모습이 안 되 보이는 까닭은 뭘까?


 노래와 춤이 끝날 때마다 치는 박수소리는 왜 또 이리 둔탁지...


두 사람만 빼고 무용수들은 나이가 많이 들었다... 음악에 맞추어 흔들림 없이 움직여 가는 그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어두운 밤,

갈 곳 없는 여자가 뒷골목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키스를 하고 사랑을 하고 그리곤 헤어지는 그런 이야기 보다...


더 슬픈 것은 밤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완벽하게 춤을 추지만

나이가 들어 점차 사그러져 가는 근육을 부여잡고서..

오늘 밤도 춤을 춰야하는 그들의 애환이 느껴지는 건 뭘까?


내가 나이가 들어서

오메로 만시가 퇴색되어서

어쩌면 우울해진 내 기분 탓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공연은 훌륭했고

최선을 다한 그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며 어두운 홀을 빠져나와 승합차에 올랐다.


1시간의 공연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오니

자정을 넘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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