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를 아는 시간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알아야 치유가 된다.

by kany


어른이 되어도 내 안에는 한 아이가 있다.

아직 크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아이.

나의 성격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나의 추억과 생각이 그림으로 표현됨을 알았다.

특히, 어린 시절 기억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이를 신경 써서 키워야 하는 이유는 특정한 기억이 꽤 오래가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추억은 나를 강하게 만드는 원동력도 되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어른들의 눈에는 대수롭지 않고 별일이 아니듯 여기는 일들이

아이에겐 평생의 기억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일이다.

늘 어울리던 친구 집 앞에 찾아가 "친구야~ 놀자"라고 소리쳤던 적이 있다.

그때는 "응답하라 1988" 에도 나오지만 작은 대문 있는 집들이 많았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친구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훤히 보이는 문틈사이로

친구가 있었다.

나와 놀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뭘까? 그때 우리 집은 만화책방을 했었고

우리 집이 부자가 아니라서 그럴까? 내가 공부를 못해서 그런가?

나는 그 상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했었다.

어른이 되고 아이를 키워보니 놀지 말고 집에서 공부하라는 뜻일 수 있음을

알았지만 그때 그 일은 오랫동안 나에게 영향을 주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응답하라”시대였기에 학교는 더 답이 없는 일이 많았다.

중학교 때 잊지 못할 일은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께 따귀를 맞은 일이다.

그 이유는 수업시간에 몰래 음료수를 마셨고 선생님은 “왜 음료수를 마셨냐?”라고 묻고

목이 너무 말라서 마셨다고 대답했더니 반성하는 태도가 아니라고 했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예전엔 훈육이란 거짓된 이름으로 폭행이 많았었다.

친구라는 영화에서 선생님이 학생에게 “느그 아버지 모 하시노?“라고 말해도 이상할 게 없었던 시대.

요즘은 “중2병”의 사춘기라고 잘 건들지도 않는 나의 사춘기 때 일이다.

나는 그때 심한 모욕감을 느꼈고 그 이후로 선생님은 존경의 대상이 아닌 반감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모든 선생님들이 다 그러신 건 아니지만 이런 일을 겪은 아이들에게는

잘못한 이유는 기억되지 않고 그날의 상처만 기억에 남아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여러 일을 겪어왔고 그때마다 내가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위협적인 사람에겐 더 강한 어조로 말하고 본능적으로 나에게 상처 줄 것 같은 사람은 미리 방어하고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강해지는 척하는 것 한다고 상처를 안 받고 강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내가 내편이 돼주어야 한다는 걸 마흔이 넘어서야 할게 되었다.

부드럽고 온화하지만 내적 강단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적 단단함이 나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더라도 나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나 스스로에게 말한다.

“넌 명품을 거치지 않아도 네 자체가 명품이야”

“그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어. 너는 귀한 존재야”

“하나님이 이 세상에 너를 보내신 이유가 있을 거야”

“부족한 어른들로 인해 속상해하지 마. 너의 인생을 소중히 생각해 “



나는 내 아이에게도 내 안에서 있는 아이에게 매일 이렇게 말하며 사랑한다고 오늘도 말한다.








#아크릴#요가하는 아이 #카니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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