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보이지 않을 떈,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중에서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잔잔한 물결 같은 그녀의 표정 뒤로
어딘가 닳아버린 눈빛이 내 주변을 서성였다.
나는 그 눈빛을 애써 외면했다.
무언가 지나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마주 앉은 테이블 위
힘없이 놓인 두 손에는
닿을 듯 말 듯한 아쉬움이 주저앉았다.
오후가 느릿하게 기울고 있었다.
노을빛이 조금씩 물러나며
우리 사이에 그림자를 길게 늘어트렸다.
말없이
커피잔만 돌리는 그녀의 두 손.
함께 있었지만
마치 혼자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일었다.
모른 척했던 그녀의 얼굴에는
낯선 그림자가 번지고 있었다.
나는 웃고 있었다.
웃음 뒤로 스치는 내 낯선 기척을
그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우리는 아무 일도 없던 듯
말없이
각자의 그림자를 안고 일어섰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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