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중에서
Part 1.
끝은 무너짐에서 오는 게 아니라
흔들림을 외면한 순간부터 시작된다
사랑은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작은 균열이 그녀에게 생기고
그녀조차 모른 채 흘린 아쉬움이, 내 안에 자라났다.
서로를 위한다며 애써 외면한 미세한 틈.
그 틈은, 생각보다 빠르게 벌어졌다.
우리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흔들림을 서로에게 말하지 않았고
말하지 않은 시간들은, 마음을 서로 멀어지게 했다.
침묵 속에서, 각자의 외로움만 자리를 넓혀갔다.
서로 멀어짐을 느끼면서도
이해한다는 말로 진심을 감췄다.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침묵했던 그 선택이
결국, 가장 깊은 이별이 되었다.
흔들리는 마음을 외면한 그날부터
우리는 말없는 이별을 시작하고 있었다.
돌아갈 수 없는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1-1 <이별통보>
퇴근길,
전철역을 나오자마자 굵은 빗줄기가 우산을 두드렸다.
집으로 걸으며 습관처럼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상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안, 처음으로 그녀의 목소리에서 낯선 기색이 스쳤다.
나는 그저 그런 날이겠거니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내 안에 고개 드는 불안감을 애써 달랬다.
몇 주가 지나고
그녀에게서 짧은 문자가 도착했다.
'이제 전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익숙한 인사처럼.
미련 없는 마지막 문자처럼.
마침표 하나 남기지 않은 이별 통보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방 안의 공기는 낯설 만큼 무거웠다.
숨을 쉬는 것조차 어색했다.
눈을 감았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녀의 모습과
함께 나누었던 모든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무도 모르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텅 빈 방 안에 홀로 남겨진 순간,
문득,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오래전부터 내 안에 머물러 있었다.
몇 번의 연속되는 배신과 좌절,
그리고 땅에 붙어버린 자존감.
해가 뜨는 아침이 괴로웠다.
모두가 잠든 어두운 밤이 오히려 편안했다.
이대로 영원히 잠들어 깨어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삶을 포기하는 마음이 아니라
내 영혼이 살아남으려는 마지막 본능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끝내 사라지지 못한 이유는
그 순간들을 그녀가 곁에서 함께 버텨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떠났다.
아니, 그랬던 그녀마저 떠나갔다.
이제는 나 혼자였다.
그녀가 남긴 빈자리와 함께,
나는 오롯이 사라지고 싶다는
내 마음을 홀로 마주해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나를 견디는 법을 배워야 했다.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건
어딘가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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