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중에서
한여름, 미사리 한강변.
늘 혼자였던 내 곁에 그녀가 조심스레 다가와 살며시 내 팔에 팔짱을 꼈다.
팔꿈치에 닿은 솜사탕 같은 부드러움.
순간, 세상은 멎은 듯 조용했고 내 안의 두근거림은 마치 소리처럼 귓가에 들려왔다.
나만을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은 눈빛.
내 일상을 자기 일처럼 걱정해 주는 다정함.
'그녀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함께하는 아침이면 샌드위치와 투명한 컵 두 개에 담긴 음료가 식탁 위에 놓였다. 방 안 가득 퍼지는 커피향기, 웃음이 오가는 대화. 분주한 출근 준비 속에서도 하루를 기대하는 말들이 따스하게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퇴근 무렵이면, 익숙한 골목의 작은 음식점이나 불빛이 아늑한 카페에서 나란히 앉아 서로의 하루를 나눴다.
창밖으로 번지는 저녁빛 노을.
테이블 위에 놓인 두 개의 잔.
가끔은 말없이 마주 보는 눈빛만으로도 충분했던 시간. 그렇게 소박하지만 행복한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익숙함이 당연함으로 몸에 베이기 시작한 건.
서로를 잘 알고 익숙해질수록 묻지 않는 것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더 이상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이 우리 사이에 조금씩 내려앉았다.
식탁에 앉아도 대화보다 각자의 시선은 휴대폰 화면에 머물렀다. 함께 있었지만 따로, 따로이지만 함께인 듯한 시간들이 점점 늘어났다.
두 개의 컵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사이를 채워주던 무엇인가가 조금씩 사라졌다.
나는 혼자였던 날들의 습관을 다시 반복하기 시작했고, 서로의 대화는 창문에 맺힌 물방울처럼 흘러내리다,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갓 구운 빵 냄새 같던 다정함은 사라졌고, 방안은 따스함보다 서늘함이 먼저 느껴졌다.
식탁 위에는 식은 커피 두 잔,
빈 의자 두 개.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무심한 시선만 남았다.
익숙함은 그렇게,
다정했던 모든 순간을
천천히,
닿지 않는 먼 곳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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