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끝내 닿지 못한 마음>

"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중에서

by 구정훈


그녀를 사랑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끝내 사랑했던 건

아무것도 놓지 못하는 나 자신이었다.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이
어느새 내 안에서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가장 먼저 사라진 건
그녀에게 닿으려 했던 내 마음의 숨이었다.


그녀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낯설어졌다.
나 역시, 서로를 마주하기보다
모르는 척, 외면하는 일이 더 편안해졌다.


불안한 변화를 감지하면서도
나는 그 이유를 애써 묻지 않았다.


그녀의 입에서 나올 대답이
불안함과 맞을까 봐.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를 붙잡고 있던 내 마음이
한순간에 무너질까 봐.


그녀 앞에서
지금의 내 마음이,

볼품없는 내 현실이,
빨갛게 벗겨진 채 들켜버릴까 봐.




무관심과 침묵은
한동안 우리를 지켜주는 듯 보였지만
그것들은 가장 먼저 다정함을 지워버렸다.


다정함이 사라진 자리엔
낯선 공허만이 남았다.
그 시간들이 우리 사이에 켜켜이 쌓였고
결국, 그녀는 내 손을 놓았다.


남겨진 나는
텅 빈 공허 속에서
존재의 윤곽마저 흐려지는 느낌에 잠겼다.


사라진 건 그녀의 손길만이 아니었다.
함께했던 시간, 그 시간 속의 나.
그리고 사랑이라 생각했던 감정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그녀를 되돌릴 수 있다고 믿으며
마지막까지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손길마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혼자가 되는 게 두려웠던
나의 마지막 애원이자, 집착이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믿는

나를 붙잡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기대어
무너져가는 나를
애써 버텨보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사라진 뒤에야
깨닫게 된 진실은,


그 손길은
그녀를 위한 것도 아니었고
그 감정은

사랑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었다.


그건...

사랑을 흉내 낸
나의 마지막 자기 위안이었다.


사랑은
그렇게 허무하게 저물었다.




모든 것이 사라진 줄 알았던 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감정 하나가
희미하게 꺼져가는 빛처럼
내 안에 남아 있었다.


그것은
빛이라 부르기엔 덧없고
아련하다 말하기엔
너무 생생한 것이었다.


끝내 말하지 못한 말.
다가서지 못한 한 걸음.
놓치고 싶지 않았던 마지막 손짓.

찢기고 왜곡된
사랑의 한 조각.


가장 아픈 이별은
그 마음이 끝내 닿지 못한 그 순간,
어디에도 닿을 수 없었던
흩어져버린 내 마음이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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