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비명을 삼킨 정원>

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중에서

by 구정훈


닿지 못한 마음이
흩어진 채 남았다.
묻지 않은 질문.
꺼내지 못한 말.


사랑이 저물어 가는데
미련만 머물렀다.


흘러넘치지 못한 감정이
나를 가라앉히고,
침묵은 오래도록
비명을 삼켰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1-7 <비명을 삼킨 정원>



"너의 과거를 알고 싶지 않아"


말이 어쩌면 다정하게 들렸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감추고 싶었던 내 안의 두려움이었다.


너의 지나온 시간을 들여다보는 일은,

내가 너의 상처와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너를 지나간 그림자가 남긴 상처 때문에,

내 마음까지 저울질할 너를,

나는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한 내가,
너에게 또 하나의 상처가 될까 봐.


그렇게 이번에는

내가 너의 과거가 될까

그게 두려웠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아.

나는 지금의 너 만을 사랑해.”

너의 말을 가로막는 이 말끝에는, 내 불안과 안도가 함께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가로막힌 그 입술에 맺힌 말들이 조용히 자라나, 어느새 비명을 삼킨 정원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나는 끝내 알지 못했다.




너는 가끔씩,

너에게 상처를 주었던 인연들의 오래된 기억을, 묻지도 않으려 하는 나에게 꺼내 보여주려 했다.


그 이야기를 할 때면
말투가 거칠어졌고, 눈빛은 애처로웠다.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듯한 떨림이, 숨결 너머로 전해졌다


나는,

그 떨림이 나를 향할까 두려워

휴대폰에 내 시선을 묶어 버렸다.

네 마음이 닿기도 전에 등부터 돌렸다.


너는,

피지 못한 꽃잎 아래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마음의 가시였다.


나는,

그 가시에 찔릴까 두려워

너의 지나온 시간을 모르는 척 외면하려 했다.


나는 묻지 않았고
너는 끝내 말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숨이 막혀갔다.


꺼내야 했던 진심보다, 다시 다치지 않으려 움켜쥔 침묵이 먼저 흘러나왔다.


그렇게 너와 내가 가꾸려 했던 정원에는 아무런 소리도 없는 비명만이 남았다.


‘지금의 너 만을 사랑하겠다’는 두려움 때문에, 너의 과거가 아니라 그 시간을 지나온 너를 놓쳤다.


그때는 몰랐다.
함께 견디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끝내 닿지 못한 마음.
들리지 않은 너의 이름.
묻지 않은 질문, 하지 못한 말.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놓아주고 있었다.


남겨진 건,
바람 속에 묻힌
아무도 듣지 못한
아주 오래된 비명뿐.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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