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넘치지 못한 사랑은, 결국 흘러버린다>

"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중에서

by 구정훈


술잔이 입술에 닿기도 전에 절망은 이미 목구멍 깊은 곳에서 맴돌았다. 이성의 벽은 빠르게 허물어지고, 비명조차 내지 못한 감정이 서서히 그 자리를 채웠다.


누구도 함께 있지 않았지만, 이 자리에는 언젠가 익숙해져야 할 상실감이 이미 앉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술잔을 들었다.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잔은 손보다 마음을 먼저 떨게 했고 입술보다 더 깊은 곳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기어코 술잔이 쓰러졌다.
술이 넘쳐서가 아니라, 끝내 넘치지 못한 마음이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무게는 ‘그녀에게 닿지 못하는 나’였고, 더 깊은 진실은 ‘모든 게 내 탓일지도 모른다’는 끝없는 자책이었다.


사랑이 아픈 건 닿지 못한 마음 때문이었지만, 가장 미운 건 끝내 진심을 전하지 못한 나 자신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사랑이라는 껍질 속에 내 마음을 밀어 넣었다.


이별을 괜찮다고 말한 적도, 그 상황을 이해한 적도 없었다. 이유를 묻지 않았고, 그녀의 침묵을 따지지도 않았다. 오직 그 침묵을 견디는 것이 그녀가 돌아오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침묵을 믿고 상실감을 접어 넣었다. 그러면 덜 아플 줄 알았다.


하지만,
이별도, 침묵도 이해하지 못한 이성은, 그녀와 계속 함께 있고 싶다는 감정의 관성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의 기억을 지우지도, 그녀를 다시 데려오지도 못했다.


남겨진 건,

위로받지 못한 마음.
꾹꾹 삼켜야 했던 나의 눈물.
끝나지 않는 밤의 긴 침묵뿐이었다.


지금도 상처의 틈보다 깊은 곳,
눈물보다 오래된 자리에는, 쓰러진 술잔과 함께 그 마음이 여전히 흘러내리고 있다.


끝내 넘치지 못한 사랑은
언젠가 흘러버린다. 감정도, 사람도...


나는 오늘,

넘치지 못한 내 마음을 기억의 입술로 마시고 있다.


숨을 죽이고,

아무 말없이,

그리고 다시 한번 삼켜내며.


이별보다 아팠던 건,

단 한 번도 말하지 못한 채 침묵 속에 자신을 가두어야 했던 그날의 나였다.


사랑은,
끝내 도달하지 못한 마음들이
가장 깊은 곳에 남기고 간
익명의 흔적이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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