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셔터가 눌릴 때마다 사라지는 것>

"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중에서

by 구정훈



팔공산에는 여름의 끝자락이 마지막 숨을 고르고, 산기슭을 따라 뻗어 있는 길 위로는 가을의 기척이 조심스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그녀는 시선을 자꾸 다른 곳으로 돌렸다. 예전처럼 먼저 손을 잡지도 않았고, 걷는 동안 그림자조차 닿지 않으려는 듯 멀찍이 떨어져서 걸었다.


그녀는 풍경 속에서도 분위기 있는 장면만 골라 사진에 담았다. 왠지 쓸쓸해 보이는 가로등,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벤치 위에 쌓인 낙엽.


며칠 뒤,

그녀의 페이스북에 그날의 사진들이 올라왔다.
텅 빈 길과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가지들.

외로움이 가득 담긴 사진들이었다.


그 사진들 속 어디에도 나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그녀의 마음속에 존재했던 사람인지, 그저 기억 속 풍경 중 하나였는지조차 판단이 서지 않았다.


화면을 넘길 때마다, 그 사진에 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니, 어쩌면 나는 오래전부터 그녀의 마음에서 사라진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함께 웃던 순간과
서로 아무 말 없이 걸어도 행복을 느끼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팔꿈치에 닿던 그녀의 따뜻한 촉감, 함께 걷던 길가에 핀 작은 들꽃, 스치는 바람 따라 한강변을 걸으며 나누었던 대화들.


나는 그 게시글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외로움이 묻어나는 글과 함께 올라온 사진들을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볼 뿐이었다.


그 후, 몇 번의 대화가 오갔다.
하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는 말은 없었다. 짧은 인사정도. 그게 전부였다.


침묵은 어둑해진 산자락을 밝혔던 그날의 조명등처럼 우리 사이를 옅게 감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불편하지 않았다.


서먹서먹한 관계가 하나의 풍경처럼 자연스러웠다.
우리는 함께였지만, 서로의 세계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 여행이 마지막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지만, 그 게시글을 보며 이별은 이미 정해진 길 위에 놓여 있다는 걸 체념하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관계를 되돌리려는 마음도, 설명하려는 시도도 없었다. 그건 어쩌면, 곧 숨이 꺼져버릴 사랑이 남기는 마지막 배려였을까.


마지막을 함께 걷는다는 건
더 이상 서로를 붙들지 않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나는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말없이 등을 돌린 사람과
그 등을 바라보는 사람 사이에 스며들던 침묵은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잊히지 않았다.


지나간 사랑은 사진 속 오래된 풍경이 되었고
그 안에서 우리는, 계절에 바랜 나뭇잎처럼 흩어졌다.


이별은,

마지막 여행의 사진 속에서
내가 점점 흐려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녀의 셔터소리는 이별의 카운트다운이었고, 외로움이 묻어나는 사진이 SNS에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나는 그녀에게서 한 조각씩 증발했다.


마지막 계절이 오기 훨씬 전부터
마음은 이미 다른 계절을 걷고 있었다.


남은 것은
풍경 속에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점점 색이 바래가는 가는 나였다.




한때는 너와 함께 걷던 길이었다.
밤이 늦도록 이야기하고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며 걷던 길.


이제 그 길을 나 혼자 걷는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와
노란 가로등 불빛이
오래된 기억의 가장자리를 건드린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발끝에 닿는 땅의 감촉이 낯설었다.


네 손을 잡았을 내 손은
주머니 속에서 웅크린 채 떨고 있었다.


이제 그만
사라지고 싶은 낯선 밤이었다.
그 생각이 낯설지도 않았다.


그까짓 사랑 때문에...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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