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중에서
사랑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낸다.
함께했던 날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 그녀가 사라진 이후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가 떠난 자리엔 침묵만이 남았다.
그 침묵은 끝내 말하지 못한 무게로 방 안을 채웠고, 남겨진 그녀의 흔적만이 기억의 표면에 얇게 스며들었다.
그때의 감정은 여전히 나를 향해 되돌아온다.
사랑이라 믿었던 그녀가 스쳐 지나간 그 방 안엔
멈춰버린 감정의 잔류만이 무겁게 자리잡았다.
말하지 못한 순간들이
우리를 멀어지게 했다.
묻지 않고,
대답하지 않고.
사랑은,
이해라는 이름 아래
조금씩 꺾여갔다.
남은 건,
전하지 못한 말들과
흩어진 마음뿐이었다.
목에 걸린 말이 있었다.
몇 번이나 떠올랐지만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아 시간을 멈추게 한 말.
‘가지 마.’
이 말 한마디를 끝내 삼켰다.
자존심이 그 말을 틀어막았다.
집착으로 보일까 두려워 침묵을 선택했다.
그녀도 알고 있었을까.
흔들리는 눈빛과 입술 끝 내 망설임을.
그녀는 시선을 피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떠났고, 나는 침묵을 남겼다.
침묵은 끝내 가장 긴 고백으로 남았다.
삼켜진 말은 어디에도 닿지 못했고
남겨둔 말들은 여전히 내 안 어딘가를 떠돈다.
마치 끝나지 않은 문장처럼.
그녀는 멀어졌고 시간은 흘렀지만
말하지 못한 감정은 더 또렷해졌다.
그녀에게 닿지 못한 말이
내 시간을
영원 속에 묶어두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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