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이해하지 못한 시간>

"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중에서

by 구정훈



창밖에는 늦은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젖은 나뭇잎 위로 빗방울이 젖어들고
방 안에는 함께 쌓아 올린 시간들이
책갈피가 닫히지 않은 책처럼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 책 속에서 나는 아직 읽히지 않은 문장처럼 남아 있다.


우리는 한 권의 책 속에서 시간을 함께 쌓아 올리며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각기 다른 여백에 머물며 서로의 이야기를 더 이상 이어가지 못했다.


너는 어깨를 떨며 흐느끼고 있었고, 나는 그 흐느끼는 숨결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가까이 있었지만 끝내 너의 고통에 닿을 용기는 없었다.


우리는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을 경계선 삼아 서 있었다. 그 말은 얼핏 다정해 보였지만, 사실은 서로의 고통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변명에 더 가까웠다.


너의 고통을 묻지 않았고 상처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괜찮을 거라 믿으며 감추고 외면했다.


나는 분명 너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 흐느낌 바깥에만 서있었다.
상처 주지 않으려, 상처받지 않으려
나를 잃어버릴까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해할게.”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 말은 때로 그 말은 고통을 멀리서 바라보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해는 말이나 생각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 속으로 나를 들여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끝내 너에게 닿지 못했다. 너의 슬픔 앞에서 나는 한 걸음 물러서 있었다.


“괜찮아”,

“이해해”라는 말로 너의 고통을 비껴갔다.


나는 너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고통을 건너가지 않고 사랑을 말하는 건, 너의 그림자만 껴안는 일이었다.


사랑은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그 고통 속으로 함께 무너지는 일이었다.

너는 멀어지고 있었지만 ,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발이 묶인 사람처럼 서 있었다.


비에 젖은 나뭇잎처럼 쉽게 마르지 않는 후회와, 아직 끝나지 않은 고통만 시간 속에 남았다.


우리는,
마음의 거리가 멀어진 게 아니라
이해하지 못한 시간 속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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