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중에서
잎새는 바람에 떨어지지 않는다.
더는 나뭇가지에 머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스스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조용히 계절의 흐름 속으로 흩어진다.
잎새가 나뭇가지를 놓는 그 순간은,
비록 체념처럼 보일지라도 결코 슬프거나 나약한 일이 아니다.
잎새는 자신이 머물 수 있는 시간을 다 살아낸 뒤, 계절의 순환을 받아들인다.
잎새는 더 이상 나무를 붙잡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몫을 다하고, 흩어지며 또 다른 생명을 위한 자리를 내어준다.
하지만 사람의 외로움은 자연의 순리와는 다르다.
마음이 불안할수록 절박하게 누군가의 다정한 품을 찾고 메달린다. 사랑이라 부르면서…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기댐이고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지극히 이기적인 바람이다.
다정함을 가장해 나만을 구해달라는 사적인 구조 요청이다.
그런 사랑은,
자신도 감당하지 못할 공허를 상대에게 던지는 일이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기댄 시작은, 결국 서로의 마음을 서서히 부식시킬 뿐이다.
인연을 맺는다는 건,
내 안의 공허를 타인의 존재로 메우려는 충동을 넘어, 서로의 상처와 온기를 끌어안으며 함께 사랑을 완성해 가겠다는 다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곁에 머문다는 건,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으면서 함께 걷는 일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탱할 수 있는 사람만이 누군가의 곁에 오래 머물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은,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결핍이 아닌 충만함으로 내미는 손길에서 시작된다.
돌이켜보면,
나는 사랑한 게 아니라 외로움을 견딜 수 없던 나를 그녀에게 건넸던 것이다.
이별을 예감하면서도 혼자 남겨진다는 두려움을 피하고 싶었다.
결국, 내 안의 간절함이 그녀 곁에 머물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끝에 남은 건 더 깊어진 외로움이었다.
외로움이란,
누군가로 인해 자신이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그 감정은 타인으로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견뎌야 하는 감정이다.
혼자라는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을 진심으로 맞이할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외로움을 짐처럼 내미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함을 감사해하며 함께 머무는 일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결핍이 아니라 온전함으로,
서로를 마주 보는 것이다.
#9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098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