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중에서
'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누군가 나에게 말해줬으면 했던 그 문장이 이제 당신의 곁에 머물러줄 책이 되었습니다.
#9 베스트 에세이는 전국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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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연인’이라는 말이 늘 불편했다.
그 말은 사랑을 낭만으로 포장하면서, 동시에 책임을 덜어내는 가장 손쉬운 핑계처럼 들렸다.
“그땐 그랬지.” 한 마디 회상으로 모든 것을 미화하면, 사랑을 지키지 못한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나 가슴 사무치게 아픈 사랑을 겪고 나니 알게 되었다.
정말 우리가 이뤄지지 못한 것이 서로 어긋난 시절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말로는 사랑을 고백했지만, 그 사랑을 지켜내고 싶은 진심은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며 침묵했고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괜찮은 척 웃으며 마음을 숨겼고
붙잡아야 할 때조차 서로를 밀어냈다.
사랑을 무너뜨린 건 시절이 아니라
서로의 진심을 외면한 자기만의 욕망이었다.
만남은 수많은 우연 중 하나이지만
머무르는 것은 언제나 단 하나의 인연이다.
붙들고 싶었다면
고난 속에서도 길을 만들었을 것이다.
기다릴 수 있었다면
시간조차 서로를 갈라놓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은 시절의 장난이 아니라
끝내 머무르겠다고 결단하는 존재의 선택이다.
우연히 스친 감정이 아니라
마침내 서로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선택하는 인연이다.
나는 다시 나에게 묻는다.
우리가 끝난 건 정말 시절이라는 타이밍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끝내 서로를 선택하지 않았던 각자의 마음 때문이었을까.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을 감당할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익숙해졌다고,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우연이 건네는 설레는 환상으로 도망친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시절연인’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 말은 수많은 우연을 미화하는 낭만을 흉내 낼 뿐
사랑은 그렇게 무책임한 낭만으로 포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우연한 순간이 아니라
끝내 머무르려 노력하는 인연들의 기록이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