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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링엄마 May 05. 2024

아버지와 처음, 산책을 했다

척력을 인력으로 바꾸는 초능력견

 처음으로 아버지와 산책을 했다. 겁이 많은 너는 새로 이사 간 낯선 동네를 무서워했고, 가족들이 둘 이상 함께 나가지 않으면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단 둘이라면 누구와 나가더라도 몇 걸음 떼지 못하고 꼬리를 축 내린 채 집으로 쏜살같이 돌아오던 너는, 아버지와 나 사이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치 마젤란을 품은 듯 두려움을 잊고 새 동네 이곳저곳을 탐험했다. 몇 걸음마다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고, 왼쪽 다리를 균형 있게 들어 동네에 네가 왔음을 흔적으로 남겼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흐뭇한 마음을 눈으로 줄줄 흘려보내며 아버지와 함께 걷는 너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아버지와는 이렇다 할 불화는 없었으나 살갑고 다정한 부녀사이도 아니었기에 어색하고 쑥스러운 기분이었다. 우리는 별다른 말없이 그저 걸었다. 가끔 네가 산을 정말 잘 탄다며, 이사를 참 잘 왔다는 짧은 대화가 오갔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순간이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가족을 묶은 끈은 운동화 끈이 풀리듯 시간이 지나면서 느슨해진다. 어쩌면 이미 풀릴 대로 풀린 가족의 끈을 다시 조이는 것은 시위를 떠난 화살을 잡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너는 그날 너무나도 쉬이, 느슨해진 우리 가족의 끈을 조였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너는 혹시 척력을 인력으로 바꾸는 초능력을 가진 강아지일지도 모르겠다고.

아버지와 푸링이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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