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링엄마 Apr 25. 2024

너의 고마움은 늦음을 모른다

나는 오늘과 내일을 네가 전하는 작은 온기로 살아간다

 

나무벤치의 늠름한 푸링

 우리 집 뒷산의 잘 닦인 산책길을 이십 분쯤 걷다 보면 나무로 된 벤치가 하나 나온다. 나무 벤치는 제법 널찍한 공터에 우두커니 네가 쉬어 가지 않고 배기겠냐는 식으로 놓여있다. 너는 그런 마음을 아는지 나무 벤치를 볼 적마다 훌쩍 망설임 없이 뛰어 오른다. 내가 너를 따라 나무 벤치에 앉으면 너는 내 옆으로 바짝 엉덩이를 붙여 앉는다. 그렇게 너의 옆에 나란히 앉아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을 보고 있자면 어느새 까마귀가 까악까악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아. 까마귀는 까악까악 울어서 까마귀구나 싶다.


 그렇게 한동안 앉아 있자니 문득 딱딱한 나무 벤치에 포슬포슬한 달걀노른자와 같은 모양새로 놓인 너의 털뭉치 엉덩이가 걱정스럽다. 나는 혹여 너의 둥그런 엉덩이가 배길 새라 무릎 위로 너를 안아 올린다. 그러면 너는 수고스럽지도 않은지 작은 고개를 뒤로 돌려 몇 번이고 내 입술을 핥고, 작은 몸으로 한껏 온기를 나눈다.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그렇게 고마움을 전한다. 너의 고마움은 늦음을 모른다. 너의 지연되지 않은 고마움이, 흐릿해지지 않은 고마움이 확실하게 나에게 와 닿아 무언가가 되었다.


나는 오늘과 내일을 그 무언가로 살아간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