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농한기를 보내면서
겨울이 되면 농촌은 농한기다. 농한기는 추수 이후부터 모내기 직전까지의 기간이다. 무엇인가 다른 것을 할 겨를이 있는 시기다. 주로 농촌에서 이때는 멀리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 집에서 쉬거나, 농촌에 있으면 마을회관이나 노인정 등에서 시간을 보낸다. 또는 마을 어르신들이 여러 모임에서 모은 돈으로 관광을 하시곤 했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 집에 잘 오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비닐하우스가 있어서 날씨를 보고 매일 온도조절을 해 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서 서울에 올라오셔도 하루도 안 되어서 바로 내려가셨다. 관광을 가실 때도 당일치기로 하루를 넘기지 않으셨다. 그래서 시골에 무슨 금괴라도 숨겨놨냐고 하면 금괴는 없지만, 금보다 귀한 고향을 떠나 오래 다닐 수 없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신 분이었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시골 일을 하면서 그저 바쁘고 힘든 일상에 매몰되기 쉽고, 대부분 인생이야 이렇게 살다가 가면 되는 일이라고 여기면서 그저 행복하게 잘 살면 된다는 생각뿐인데, 아버지는 평소에도 인생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기를 좋아하셨다. 특히,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 마음이란 것이 너무 오묘하다, 이 마음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내게도 자주 말씀하시곤 했다. 성경을 보면 금방 이해가 되는데 즉, 성경은 마음의 세계를 기록해 놓은 말씀인데, 그 이야기를 하면 잘 듣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궁금증은 많으신 것 같았다. 이런 이야기들을 종종 많이 했지만, 가능하면 종교적인 부분을 배제하려는 눈치가 많았다. 성경을 말하면 오히려 유교적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시곤 했다.
비가 내리고 설한풍이 일었다. 겨울처럼 차가웠다. 10시에 하우스를 반개해 놓고 안동네(큰 마을) 회관에 갔다. 바둑도 두고 화투도 쳤다. 놀다 보니 점심밥이 들어왔다. 네 사람이 함께 점심을 먹었다. 밖은 바람이 불고 눈비가 날린다. 겨울이 다시 온 듯하다. 표를 치고 손해를 안 본 때가 없다. 아무리 놀기도 좋지만 마음이 아프다. 날씨가 차가워 아무 일도 못 하고 종일 휴식이다. 그래도 되는지 마음이 편치 않다. 자신이 왠지 모르게 기동 하기가 싫다. 나서기가 싫다. 몸에 힘이 떨어졌다는 증거다. 이제는 다 살았다는 증거다. 내 삶이 다한 것을 몸이 말해주고 있다. 당초에 왔던 곳으로 다시 가야 하는 것인가. 내가 당초에 있던 그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 먹고 자고 하는 것 없이 非色亦非空일지. 율곡 선생이 먹지도 않고 수도만 하는 금강산 노승에게 전해준 글귀다. - 당초에 왔던 곳으로 가야 하는가. 2016.2.29.
아버지는 마을 회관에 가셔서 바둑도 두시고 화투도 치신 것 같다. 아마도 화투를 치고는 돈을 좀 잃으셨나 마음이 아프다고 쓰셨다. 하기야 돈 잃고 좋아하는 사람 없으니 당연한 얘기지만, 휴식을 취해도 노는 것으로 생각하고 마음이 편치 않으셨던 것 같다. 그러면서 생각이 점점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노는 것이 불편하다 → 그렇다고 일어나 무엇을 하기도 싫다 → 이제는 늙어서 몸에 힘이 없다는 증거다 → 다 살았나 보다 → 원래 왔던 곳으로 가야 하는가 → 거기는 어떤 곳일까 →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아무것도 없는 곳인가’ 생각은 꼬리를 물고 결국 유학자인 청년 시절의 율곡 이이와 금강산 노승과 선문선답했던 글귀를 인용하셨다. 인생은 색(色)도 아니고 공(空)도 아니라는 것. 내용이 무슨 뜻인지 청년 율곡 선생이 금강산 노승에게 건넨 시구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魚躍鳶飛上下同(어약연비상하동) 물고기 뛰고 소리개 날아 아래위가 한 가지
這般非色亦非空(저반비색역비공) 이는 색(色)도 아니오, 공(空)도 또한 아닌 것
等閒一笑看身世(등한일소간신세) 무심히 한 번 웃고 내 몸을 둘러보니
獨立斜陽萬木中(독립사양만목중) 노을 지는 숲, 나무들 사이에 홀로 서 있구나
이 글귀를 노승에게 써준 연유는 이렇다.
금강산을 지나다가 식음을 전폐하고 수도를 하고 있는 노승을 만난 청년 율곡은 그 스님과 변론을 하려고 장난기 어린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즉, 공자와 석가 중에서 누가 성인(聖人)이냐고 묻자, 스님은 사람을 놀리느냐고 말한다. 그러자 율곡은 이 묘한 불가의 가르침이 유학의 범위 안에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슬슬 마음을 긁는다. 그러자 스님이 유가에도 불가에서 말하는 ‘마음의 부처’가 있냐고 묻는다. 이때 율곡은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을 거론하면서, 유가에도 본성을 말하고 있으니 마음의 부처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유가는 거기에 더하여 실리(實利)를 더 추구한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유가가 더 우위에 있다는 말로 공격한 것이었다. 그러자 스님이 아버지가 인용한 위 두 번째 연의 ‘비색역비공(非色亦非空)’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즉, 색(色)도 아니고 공(空)도 아니다 라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었다.
율곡 선생은 그 질문을 받자 그것은 그저 문자적인 말장난이라고 응수한다.
즉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말은 그저 실리 없는 문자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공수교대하여 위 첫 번째 연의 질문을 한다. 어약연비(魚躍鳶飛) 즉,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닿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 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색인지 공인지 알려달라고 한다. 그러자 스님은 색즉시공(色卽是空)이 우주 만유 즉, 진리의 본체라고 하면서 그것은 유가의 가르침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율곡 선생은 이에 불교 진리는 불립문자(不立文字) 즉, 도의 깨달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므로, 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는데 어찌 문자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느냐고 반격을 하자 노승이 깜짝 놀랐고, 이에 시구 하나를 써달라고 한 것이 바로 위 시인 것이다.
아버지는 전에도 율곡과 금강산 노승의 대화를 한번 언급하신 적이 있었다.
팔십 평생 유교적 환경에서 자라셨기 때문에 율곡의 스님에 대한 반격 이야기는 아마도 신나는 일이었으리라. 사실 그런데도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주문을 아직까지 외우고 있었던 것을 보면, 그 경계가 모호하기도 하다. 그것은 중국의 도교 중 칠성(七星) 주문이었고,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에 위험을 넘기 위한 수단으로 그것을 외우신 것이었다. 거기에 큰아들이 성경과 복음에 대해 쉬지 않고 말했으니, 얼마나 도(道)에 대한 정체성의 혼돈이 오고 불분명했을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해드렸어도 이른바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던 것이다.
'비색역비공(非色亦非空)'
아버지의 일기 속에 있던 이 글자.
아버지는 이제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워오는데 나는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고, 그것은 그냥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러면서 당초에 왔던 곳으로 다시 가는가?라는 질문, 아주 중요한 질문을 남기셨다. 다른 편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왔던 곳으로 다시 간다’는 말은 ‘돌아가신다’의 뜻이다. 죽음을 존대해서 쓰는 말이다. 그것에 대한 의문을 가지신 것이 농한기 때,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고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 가졌던 인생살이와 그 끝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표였던 것이었다. 일기를 보면서 조금 일찍 이 일기를 훔쳐서라도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대화를 좀더 진지하게 했더라면, 아버지와 아들과의 대화가 얼마나 유익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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