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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Jul 26. 2022

네 친구가 죽었다

친구의 죽음


ㅇㅇ가 어제 석양에 밭에서 나무 심다가 급성 심장병으로 쓰러져 죽었다. 너무나 믿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평소 젊고 건강한 사람인데 너무나 허무하게 갔다. 그 안사람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 보기가 너무 안타깝다. 나를 붙들고 쉰 목소리로 흐느껴 운다. 참으로 안 됐다. - ㅇㅇ가 죽었다. 2017.2.17            



초등학교 친구였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농사일을 시작했다.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았고, 농촌의 일이라면 어려서부터 누구보다도 잘해 왔기에 아예 일찍부터 농사일에 인생을 걸었다. 그의 집은 우리 시골집에서 100미터 정도로 가까운데 시골에 갈 때마다 그를 만날 수 없었다. 들에 나가 있는 경우가 다반사고 가끔 오다가다 길에서 마주치는 정도여서 그때마다 그냥 눈인사로 대신했다. 그는 오랜 농촌생활을 하면서 기반을 잘 닦은 성공한 친구였다. 벼농사뿐만 아니라 포도 농사와 다른 특용작물도 병행해서 큰돈을 벌고 있었다. 마을에서 가장 젊은 사람인 데다 건강해서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마을의 모든 농사일을 콤바인, 트랙터 등 기계로 도맡아 처리했다.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을 정도로 건강해서 가끔 시골에 가서 볼 때마다 농촌의 건강미가 철철 넘쳐흘렀다.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다.

아버지가 사고로 병원 출입이 잦았던 때 아버지를 뵈러 시골에 갔다. 아버지는 아픈 몸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수박 농사를 짓고 계셨다. 땀을 흘리며 아버지를 도왔다. 눈으로 보고도 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내게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두 덩이의 수박을 들고 길이 100미터 이랑 사이를 걸으면 이랑 끝까지 갔다 오기만 해도 기진맥진해졌다. 특히 비닐하우스 높이가 높지 않아 고개를 숙이면서 작업을 해야 해서 작업 환경도 안 좋았고 효율도 많이 떨어졌다. 따낸 수박을 포터에 싣고 있는데 그 친구가 말없이 지나갔다. 그를 불렀다. 조금 있다가 잠깐 찾아볼 테니 어디 가지 말라고 했다.      

 

날씨가 너무 더워 땀을 훔치며 수박 세 덩이를 자전거에 싣고 그의 집으로 갔다.

처마 밑 그늘에서 그와 정말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희끗희끗한 머리, 검붉은 얼굴, 투박한 사투리는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내게 가감 없이 보여줬다.  

“노인이 다 됐구나?”

“시골 사니 그렇지.”


그와 얼굴을 마주 보고 함께 이야기를 해 본 지가 십 년도 넘은 것 같았다.

농촌 살이 고생이 되지만 돈도 많이 벌고 있어 걱정 없겠다고 하자 골병드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나를 보며 네 아버지 빨리 일을 빼앗든지 남에게 주든지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친구는 묘목을 심으러 밭으로 가서 작업하는 도중 심장마비가 온 것 같다고 했다.

아무도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그냥 그렇게 추측만 할 뿐이었다. 마을에서는 난리가 났다. 연세 많은 어르신보다 젊은 사람이 속절없이 먼저 갔다고 마을 전체가 초상집이 되었다. 그 일이 있었던 다음 날 아버지의 일기는 너무 간단했다. 슬픔과 놀람을 표현할 수 없었던, 아니 쓰고 싶지도 않았던 그때의 심정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져 왔다.


'보기가 너무 안타깝다. 참으로 안 됐다.'


친구 부인이 아버지를 붙잡고 흐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그 말 외에는 무엇이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가 죽고 내겐 일주일 후에 연락이 왔다. 일부러 내가 빈소에 가면 그의 부인이 기절을 할 것 같다고 해서 나중에 알려준 것이었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렀다.

얼마 전 어머님을 뵈러 시골에 내려갔다가 친구 부인을 길에서 만났다. 밝은 얼굴이었다. 그것을 보며 세월이 묘약이라는 것을 다시 느꼈다. 어린 동생을 잃고 근 십 년을 방황했던 사춘기 시절, 그 시절은 모든 것들에 슬픔이 묻어 있었다. 아버지의 말씀 한 마디에도, 푸른 하늘도, 노란 가을도, 하얀 겨울도 내게는 슬픔의 연속이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 슬픔은 나를 데리고 갈 기세였다. 이제는 그 슬픔이 종이 위에 추억으로 기록될 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을 보고 죽음이 이길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다시는 미련을 붙잡지 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 결심도 작은 강아지 한 마리와의 이별에서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그런 자신을 보면서 그냥 순리대로 그때그때 슬픔이 주는 대로 슬퍼하면 되고, 기쁨이 오면 마음껏 기뻐하는 세상을 사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을 했다. 마음대로 되진 않지만, 그것을 오래 간직하며 몸을 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느낀다. 속은 알 수 없지만 친구 부인의 겉모습이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쨌든 먼저 간 생명만 불쌍할 뿐이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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