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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Aug 08. 2022

다 뜯겨 먹힌 가시고기처럼...   

늘 애틋한 동생들


아버지 형제는 5남매다.

지금은 아버지와 셋째 작은아버지 그리고 큰고모님이 돌아가셨고, 둘째 작은아버지와 서울에 있는 막내 고모님만 남았다. 둘째 작은아버지는 같은 동네에서 평생을 같이 사셨다. 작은아버지는 늘 하루 일이 끝나면 큰집 형님한테 들렀다. 그냥 왔다 가는 한이 있더라도 저녁을 드시고 큰 집으로 와서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신다든지, 할 얘기가 없으면 꾸벅꾸벅 졸다가 우리가 깨우면 그때서야 돌아가시곤 했다. 두분의 하루 일정은 그렇게 작은아버지가 저녁 식사를 하시고 형님집에 들러 잠시동안이라도 머물다 가시면 하루가 끝났다. 어린 우리가 아무리 봐도 두 분은 우애가 깊은 형제지간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아버지는 당신보다도 동생들이 더 잘되기를 바라셨고 실제로 사는 것도 우리 집보다도 동생들 집이 더 잘 살았다. 두 분은 일하는 것도 서로 도와가며 했다. 일하는 데는 큰 집 작은집이 따로 없었다. 작은아버지가 큰 집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다 알고 있어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느냐고 큰소리치시는 것도 어렸을 때 자주 들었다. 두 분 다 연세가 많아지고 일하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여전히 하루 일을 시작할 때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서로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예전이나 다를 바가 없었던 모양이다.         

  


아침 일찍 동생이 부른다. 수박 심을 간격을 표시한 장대를 준비했냐고 묻는다. 엊저녁 대나무를 베어 놓고 거기에 숫자를 쓰려고 매직을 찾고 있는 차에 동생이 온 것이다. 이제 준비하고 있다고 했더니 그것을 미리 만들어 놔야지 아직까지도 만들어 놓지 않고 뭐 했느냐고 한다. 몸이 피곤해서 만드는 것을 잊었다고 했다. 급히 54cm로 350주 심도록 자를 만들었다. 대나무 장대 하나가 54cm짜리 8개 나온다. 아침 식전에 1동을 뚫고 식후에 1동을 뚫었다. 수박 모종은 오후에 받기로 곡성 육묘 개인 상회에 약속하고 오후 4시에 받아 2동을 심고, 7시 해 질 무렵쯤 끝냈다. 일이 귀찮다. 허리, 다리, 발이 아프고, 저리고, 몸이 피곤하고 괴롭다. - 수박 모종을 심다 2014.6.14          



얼마나 일하는 것이 귀찮고 피곤하셨을까.

하루 일을 끝내고 나서 그 피곤함을 귀찮고, 아프고, 저리고, 괴롭다고 표현하셨다. 그냥 마음이 먹먹해진다. 일을 그만두시라고 해도 일을 하지 않으면 빨리 죽는다는 말씀으로 자식들의 잦은 화살을 방어하시면서 속으로는 저렇게 힘이 들고 피곤하셨던 것이다.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아버지 역시 평생 해 왔던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농사일이 매번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는 것보다 더 싫었던 모양이다. 꼭 농사일만 전부는 아닌데 평생 그 일을 해 와서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마음이 든다. 그냥 크게 마음먹고 일을 그만두시면 또 다른 일들로 시간을 보내고 몸을 혹사하지 않으면서 세월을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러셨을까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마음만 든다.            



아버지 세대가 이제 서서히 황혼의 그림자처럼 지나가고 이제는 우리 세대가 그 자리에 들어가고 있다. 아버지 세대처럼 우린 가난하지도 않았고 육체적인 노동을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다 아버지가 자식들만큼은 당신처럼 노동하지 않고 공부해서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신의 노동이라는 처절한 희생의 대가는 몸을 상처 낸 만큼 자식들에게 몇 배로 주어진 값진 행복의 씨앗으로 남았다.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인식을 지금 아버지의 일기장을 편 후에 하고 있다는 것이 자식으로서 그저 한스럽고 고통스러울 뿐이다. 때 늦은 눈물은 그저 사치인 것 같고 변명과 자위의 몸부림일 뿐, 아버지 인생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후회일 뿐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가시고기처럼 당신을 다 뜯겨 먹게 하시고는 원래 계시던 곳으로 가신 것이었다. 수고와 슬픔이 기록된 낡은 일기장만 우리에게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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