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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Jun 30. 2022

어이할꼬, 어이할꼬, 동생을 어이할꼬

작은아버지


아버지는 5남매 중 장남이셨다.

극도로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제대로 먹지도 배우지도 못하는 환경에서 자랐고, 그래서 더욱 동생들을 챙기셨다. 특히 서울에 있는 셋째 동생에 대해서는 특별했다. 그 동생은 사업 수완이 좋았고, 누구보다 성실했으며 인간적으로도 자상했다. 특히 언변이 좋았던 그 동생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아버지는 그런 그 동생에 대해 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셋째 동생과는 잊지 못할 추억이 아버지에게 있었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가난한 시절, 셋째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을 때, 둘째와 함께 도랑에 가서 우렁을 잡아 그 국물을 먹였더니 원기를 회복하고 살아났다는 그 이야기. 그 스토리는 우리를 앉혀놓고 생각날 때마다 말씀하신 단골 메뉴였다. 너희들도 이렇게 서로를 위해 살라는. 우리 자식들이 보기에도 아버지 형제들은 우애가 너무 깊었다.     

 


그런데 그 셋째가 많은 돈을 벌고 부유해지자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경마장. 그곳은 한 마디로 블랙홀이었다. 수십 년간 쌓아 올린 부를 3년 만에 다 삼켜버렸고, 그 일로 아버지 형제들 모두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결국, 셋째는 전립선암이라는 진단까지 받아 설상가상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극진히 동생을 생각했던 아버지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셋째 동생 소식에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다.            



정유(丁酉)년 새해가 밝았다. 丙申년을 바람에 날린 것처럼 아쉽게 보내버렸다. 내 나이 35년 1월 1일. 오늘이 2017년 1월 1일. 82돌이 되는 날이다. 나이를 더할수록 한 해 한 해가 빨리 회전되는 것 같다. 대망의 한 해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셋째 동생 ㅇㅇ이가 전립선암이라고 2년 전 의사가 약으로 다스리자고 해서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이제는 완치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애들 큰고모한테 전화가 왔다. 그런데 본인은 항암치료를 받아도 죽고, 받지 않아도 죽는데 항암 주사를 맞고 못 견디게 시달릴 것 뭐 있냐고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내가 급히 전화했다. 그렇다고 죽기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냐고 소리를 질렀다. 죽어도 살아도 항암치료를 받으라고 강하게 말했다. 이런 절망적인 문제가 또 왜 생겨서 내 마음을 이렇게 후려치는지 모르겠다.

- 정유년 새해 첫날 (2017.1.1.)          



아버지는 자식들보다도 동생들을 더 챙기셨다. 자식들이야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특별히 서운한 마음을 표시하지 않았지만, 자식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시고 그 절절한 마음을 표현하시는 것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암 진단을 받은 셋째 동생은 결국 아버지보다 몇 개월 일찍 세상을 떠나셨지만, 아버지도 그 셋째 동생이 세상과 이별한 지 얼마 못 되어서 동생을 따라가셨다.      



아버지의 일기 속에는 동생의 절망이 아버지의 절망으로 마이그레이션이 된 그때의 심정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정초가 되면 늘 토정비결을 보시고 나쁜 것도 좋은 것으로, 좋은 것은 더 좋게 정답을 내놓으면서 식구들 전체의 길흉화복을 점쳐주셨지만, 아버지는 꼭 사건의 결말에 따라 그때의 해석을 당신이 잘못 풀었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일곱 살 난 어린 동생을 잃고 우수에 빠져 있는 나를 보시고, 아버지는 그 동생의 운명을 점쳤던 그때를 회상하셨다. ‘토정비결에 네 동생이 화려한 꽃 속에 있어서 녀석의 한 해가 대운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알고 보니 상여를 의미한 것이었다’고. 나는 이후 아버지가 풀어 설명한 명리에 대해 한 번도 신뢰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른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었으므로.        


   

천근만근 중압감이 밀려든다. 잘살든 못살든 살 만큼 살다 가면 좋으련만 내 앞에 가게 생겼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이제는 방법이 없으니 죽는 꼴을 어이할꼬. 사람은 완벽했는데 그 무슨 도박판에 말려들었는가. 전 재산을 탕진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겨우겨우 삶을 부지했는데 설상가상으로 병을 얻어 죽게 생겼으니 불쌍하기 그지없다. ㅇㅇ가 전화하여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해서 교회 간다고 한다. 이제는 갈 길이 임박하여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다. 가보라고 했다. 그래도 몸이 굳지 않도록 운동은 좀 했다는데 어이할꼬, 어이할꼬. 이렇게 막막한 마음 어디 둘 곳이 없구나.

- 죽음 앞의 동생을 생각하며 (2017.1.18.)          



내게는 작은아버지.

평택에서 일을 그만둘 때까지 몇 번 찾아갔다. 두 시간 동안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인도했다.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인 작은아버지는 이후 목사님하고 만나 깊은 교제를 나누었다. 나는 오히려 작은아버지 때문에 아버지가 더 병을 얻을 것 같아 염려가 되었다. 걱정 근심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좀 냉정하게 바라보고 긍정적인 말씀을 해달라고 몇 번이고 전화를 드렸다.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사고였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작은아버지 영향도 많이 받은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칠십을 넘어 팔순을 향해 가는 그 동생을 생각하는 아버지. 그 동생의 자식들도 어른이 되어서 충분히 그 역할을 다하고 있었는데, 왜 그렇게 동생에 대한 마음이 애틋하고 강렬했을까. 아마도 아버지의 시계는 그 어린 시절에 정지되어 있었고, 그 어려웠던 시절의 아픈 기억들이 당신 마음의 방에서 떠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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