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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Jul 03. 2022

하루 종일 헛일만 했다.

재수 없는 날


아버지는 칠십이 넘어서까지 포터(Porter)를 운전하셨다. 1종 보통 운전면허증을 육십이 넘어 취득하셨는데 연세가 많아질수록 작은 사고들이 줄을 이었다. 포터에 수박을 가득 싣고 경매장에 가다가 차가 길옆 도랑에 빠져 죽을 뻔한 일도 있었고, 작은 접촉사고도 여러 번 있었다. 집에 들어가는 문이 좁아 포터 양쪽으로 긁힌 자국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백미러를 어디에다 부딪쳤는지 양쪽 다 없는 상태에서 위험하게 차를 운전하고 다니신 적도 있었다. 자식들은 사고가 날까 걱정이 되어 늘 그 차를 빨리 팔아버리라고 했다.


한 번은 추석 명절에 꼭 논에 가봐야 한다고 해서 아들 며느리들이랑 같이 갔는데, 아무리 봐도 그 길로 들어가면 분명히 바퀴가 빠지겠다 싶어 처음부터 극구 만류했지만, 뒤 짐칸에 아들 며느리들 태우고 무슨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 질척한 논길로 접어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퀴가 진흙탕에 빠져 두 시간 동안이나 생고생을 했다. 그런데도 끝까지 뉘우치지도 않았다. 아들 며느리들이 궁시렁거리는 사이 묵묵히 바퀴 밑에 돌을 집어넣으며 빠질 곳이 아닌데 빠졌다고 자기 합리화를 계속하셨다. 정말 천하장사도 못 이기는 고집을 피우시는 그런 분이었다.     

 

아버지는 차가 있으니 편리해서 좋긴 하지만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싶었는지, 아니면 아들 며느리들이 그 차 팔아버리라고 노래를 불러서인지 결국 차를 파셨다. 그런데 농촌에서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은데 차가 없으니 불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전에 타다가 차 때문에 따로 모셔놓고 있던 아들들이 타지 말란 오토바이를 다시 타고 다녔다. 그것이 운명을 가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해가 지면서 기온이 급감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헛일만 했다. 안사람 핸드폰 등록 관계로 시내에 갔다. 주민등록증을 가져가야 하는데 챙기지 못해서 못했다. 할 수 없이 현관 문고리만 사 가지고 오다 오는 길에 주생에서 이발하려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는데, 주생초등학교 입구 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 몸은 다치지 않았지만, 오리털 잠바가 길바닥에 스치는 바람에 찢어져 버렸다. 비싸게 산 옷인데 좋은 옷을 버려버렸다. 넷째 며느리가 사준 것인데 너무 아깝다. 기념으로 죽을 때까지 입으려고 했는데, 옷이 따시고 좋았는데 사준 가치 없이 찢어버렸다. 내가 똑같은 털 잠바를 사 입어야겠다. 며느리 보기에 다름없이 하기 위해 구입해야겠는데 어떤 곳에서 사야 되는지 알 수 없다. 오후에 시청까지 갔으나 또 헛걸음치고 말았다. 지갑을 놓고 와서 각 증명을 내야 하는데 증빙할 증명서가 없다. - 하루 종일 헛일만 했다 (2015.2.17.)          



아버지로서는 그날이 속칭 재수 없는 날이었다. 어머니 핸드폰을 등록하러 시내에 가시면서 준비해야 할 어머니 주민등록증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나, 시청에 가서 무슨 증명을 발급받으러 갔는데 지갑을 집에 두고 가신 것이나, 또 그 과정에서 오토바이 타고 가시다 넘어져 넷째 며느리가 사준 비싼 옷을 땅에 갈아버린 것이나 하루 종일 헛일만 하고 손해만 본 날이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하러 가실 때 철저히 준비하신 것으로 유명했는데, 연세가 많아지다 보니 세월이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아직은 젊은 우리도 무엇인가 빠뜨리고 나갈 때가 많은데, 연세 많으신 아버지가 그런 일이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넷째 며느리가 사준 오리털 잠바를 땅에 갈아버린 일을 표현한 부분이었다. 즉, 아깝기도 했지만 일기 속에서 넷째 며느리한테 면목이 없을 것 같아 똑같은 것을 사시려고 했다는 표현이다. 사실 백화점에서 산 그 옷을 백화점이라고는 가본 적이 없는 아버지가 어디에서 사야 하는지 모르시는 것은 너무 당연했다. 그냥 오토바이 타고 가다 넘어져 그렇게 됐다고 하셨다면, 며느리들이 다시 다른 옷으로 사 드렸을 텐데, 오토바이 그렇게 타지 말라고 했는데 타고 가다 사고가 났으니 어떤 마음이었겠는가. 그 말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똑같은 옷을 사려고 하니 아무 곳에서 살 수도 없는 옷이고, 어쩔 수 없이 그 답답함을 수첩에 폭로한 것이다. 그때의 그 심정을 알 만도 하다.       



공설시장 앞 행길에서 또 경미하게 승용차와 충돌해서 넘어졌다. 잠깐 후미를 본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승용차 기사는 젊은 여자였다. 밖으로 나오더나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내 몸 다친 일보다 승용차가 얼마나 피해가 났는지 그것이 걱정됐다. 몸에 상해를 입지는 않았다. 여자 기사는 차 충돌이 경미해서 피해는 없다고 하면서, 몸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이상이 있으면 병원에 보내 드릴테니 병원에서 진찰하고 약을 쓰라는 말을 한다. 별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왔다. 다리에 힘이 없어 잘 넘어진다. 출발할 때나 정차할 때 잘 넘어진다. - 또 오토바이 사고 나다 (2017.12.5)  



사실, 아들들이 몰라서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오토바이 타고 가시다 잦은 사고가 많았다고 어머니가 알려주셨다. 어떤 할머니와 부딪쳐 병원비 다 물어준 적도 있고, 크고 작은 사고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불편하더라도 그만 타셨어야 했는데 그걸 절대 놓지 않으셨다. 예전에 둘째 아들 결혼 일주일 남겨놓고 오토바이 타고 가시다 넘어진 일이 있었다. 눈 부위에 상처를 입어 하는 수 없이 결혼식장에 선글라스를 쓰고 가신 일이 있었는데, 그게 평생에 부끄러움이 된 것을 잘 아셨으면서도 오토바이를 버리지 못했다. 아들들이 다 타향에서 직장생활을 해서 시골에 같이 살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돌봐 드리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다. 사실, 여러가지로 불편한 생활을 하게 해서 죄송한 마음이 너무 많지만 아버지는 아들들의 이야기를 너무 안 들었다. 결국, 후일 아버지는 그 오토바이 때문에 세상과 영원히 이별해야 했다. 직장에서 하도 많이 들었던 누적된 안전 불감증 즉, 하인리히 법칙이 그대로 적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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