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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Aug 16. 2022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인가

아버지의 현실 인식과 마음의 변화


어릴 적 아버지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어느 여름날 저녁, 마당에 멍석을 펴면 그날은 팥국수 먹는 날이었다. 어머님이 만든 보라색 팥국수가 그렇게 맛이 있었다. 외양간 쪽에 모기를 쫓기 위해 군불을 때고 연기가 온 마당을 훑고 지나가면 모기들이 잠시 동안은 달려들지 못했다. 저녁을 먹고 몸이 나른하면 아버지는 아들들을 모아 놓고 천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오리온자리를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이야기를 지어내셨다. 우리 모두 그것이 가상의 이야기로 사실이 아닌 줄을 알았지만 그냥 믿어줬다. 사실 그때의 그 이야기로 살아가면서 상상력이 풍부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것은 확실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꿈이기도 했고 희망이기도 했다. 우리들의 미래가 별빛처럼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여름날 저녁 팥국수를 먹고 난 후에는 다들 아버지 앞으로 가까이 갔다.


아버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자주 말씀하셨다.

지금 들으면 아주 평범한 이야기지만 가치 있는 삶이란 잘 배워서 지혜롭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 또 절개에 대한 이야기도 가끔 하셨다. 단종을 보위하려다 결국 세조에게 발각돼 처형을 당한 사육신 성삼문의 시조를 자주 읊으셨고,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그 시조는 어린 마음의 방에 들어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 몸이 죽어가서, 봉래산, 낙락장송, 백설, 만건곤, 독야청청'의 단어들은 성삼문의 목숨을 내놓는 절개보다도 내겐 그때 그 시절의 분위기와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왔다.  


아버지는 평생 흙을 밟고 사시면서 인생에 대한 사유를 많이 하신 것 같다.

이렇게 죽어라고 일하는 것이 인생을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 몸이 으스러지도록 일하면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인가. 사실 어릴 적 우리에게 가치 있는 삶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하셨지만, 세월을 보내면서 당신의 노동에 대한 회의(懷疑)와 다다를 수 없는 이상(理想)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셨던 것 같다. 몸도 안 좋은 데 어쩔 수 없는 농촌 일에 매인 삶,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혼자 질문하고 혼자 답해야 하는 그 답답함을 일기를 통해 조금씩 엿볼 수 있다.



오늘도 낮 기온이 -4도 영하의 날씨다. 3월 중순이 넘었는데도 춥다. 폭풍이 지나간 듯 몸이 긴장해 있다가 지금은 편안해졌다. 낮 동안 일하고 나면 다리가 통통하게 살이 붓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장딴지에 실금이 서며 깡마른 다리가 된다. 이것은 척추관 협착증의 신경계 작용인 듯싶다. 돈 벌어서 가지고 갈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일을 한 것인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일손을 끊고 어떻게 살면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도 아직까지는 명확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 어떻게 살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2015.3.22(금)



큰아들은 그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아버지가 팔순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풀어놓았다.

그러나 팔십 평생 유교적인 환경 속에서 바위처럼 움직일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을 터치하려고 조심스럽게 애를 써 보았지만, 견고한 생각의 바위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지만 계속 아버지께로 다가갔다. 물론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것이 주관적인 것이라 정답이 있을 리가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 많은 것이 가치 있는 삶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것들이 얼마든지 가치 있는 삶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딱 이것이 그것이다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버지의 영혼을 생각하며 조금 더 차원이 높은 다른 세계를 이야기했다. 즉 그것은 바로 다가오는(來) 세상(世)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늘 말씀하던 참(眞) 이치(理)에 대한 것이었다. 바로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에 대한 것으로 돌아갈 본향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당신의 주장이 매우 강하셨다.

그 주장을 깨려면 내가 주장하는 것이 이치에 맞아야 했고, 이치에 어긋난다고 생각되면 마음의 문을 닫았다. 즉,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을 이야기할 때 아버지에게 보이지 않는 세상은 믿을 수 없는 세상이었다. 증명이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공기와 전기, 마음과 생각, 사랑과 기쁨 등을 총동원하여 설명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시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무조건 네가 틀렸다고 하시지는 않았다. 당신도 그것을 아니라고 증명할 수 없었고 답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자주 경운기와 오토바이에 몸을 다치고 병원신세를 지자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었다.



아들들이 내려와서 교회를 가자고 한다. 성화에 못 이겨 따라갔다. 목사님과 형제들이 반가워한다. 설교가 이어졌고 목사님은 가을 추수에 비유해 알아듣게 설명을 했다. 이해는 되는데 마음에서 거부한다. 왜 싫어지고 그런 거부감이 올라오는지 나도 알 수 없다. 목사님 말씀대로 하늘과 땅, 바다와 저 멀리 밤하늘 별과 달을 보면 참 기묘하다. 성경에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한다. 그래 믿어야겠다. 믿어보자. 우리들은 하나님 씨를 받아 태어나 살고 있다는 것인데 생각이 미치지 못하여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이 의심이 많아 못 믿었었다. 그런데 내 마음이 하나님의 생각을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자기 씨를 넣어 창조하셨다고 하는데 세상 이치로는 설명이 안되지만 믿으면 또 쉬운 일이다. 사람도 제 자식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면서 자식을 구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하나님도 악한 사탄 꾀임에 벗어나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믿자. 믿는 것이 구원이 될 것이다. 내 불굴의 미치지 못한 생각을 돌려 아버지 하나님 모시고 그 품속에 안기겠다. 자식을 구제하기에 온갖 수단을 다했는데 그 품속을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과 동식물을 살게 만드신 오곡백과가 있는 이 세상에서 정해진 수명만큼 살다 부르실 때 그 품으로 가리라. 

- 부르시면 그 품으로 가리라. 2016.10.16(일)



실로 내겐 경천동지 할 일이었다.

80년 동안 삶의 근간이 되었던 유교사상에서 하나님을 믿는 세계로 돌린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유교적 마인드를 버린 것은 아니었다. 물론 버리고 안 버리고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아버지가 마음을 돌이켰다는 점이 놀랄 만한 일이었다. 사실 여기까지 오기 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잦은 오토바이 사고로 죽을 고비도 여러 번 있었고, 크고 작은 경운기 사고도 있어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기도 했다. 결국 아버지는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어떤 운명 때문인데 그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란 것을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이후 늘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회를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불평과 불만이 많았고 어머님을 많이 핍박하기도 했다.


어쨌든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로 다시 되돌아왔을 때 궁극적으로 ‘생명’에 대한 인식과 ‘영원’에 대한 사고가 조금씩 살아났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아버지는 조금씩 보이는 세계로부터 거리를 두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한계가 있듯이 하물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우리가 쉽게 자신의 ‘생각’으로 재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조금씩 깨닫는 것 같았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것이 감사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말하는 ‘복음’은 다 이해하셨지만 그건 머리로 이해한 것일 뿐 마음은 다른 곳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위 일기처럼 마음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가치 있는 삶’으로 여기셨을까. 표현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지만 행간에 드러난 마음을 엿보면서 당연히 그러셨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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