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에서 나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는 작가를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운동하는 작가라면 격하게 애정한다. 내가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글도 쓰고 운동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조금은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도 쓰며 운동하는 작가라고 하면 몇 명이 떠오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람이 있다. 바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하루키 작가의 소설을 처음 접한 건 20대였다. 지금은 <노르웨이의 숲>이라고 알려진 <상실의 시대>로 그를 처음 만났다. 소설 속엔 20대가 주인공이었는데 희안하게도 20대인 나에게는 그다지 와 닿지 않은 소설이었다.
40살이 되었을 때쯤 누군가의 선물로 다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근데 이게 웬일. 과연 내가 읽은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새롭게 다가왔다. 40대에 막 접어든 어느 추운 겨울날, <노르웨이의 숲>은 가슴 절절히 내 맘을 파고들었다. 20대 남녀 이야기가 40대에 와서야 내 이야기처럼 와 닿다니 예상치 못한 신비한 경험이었다.
2.
운동은 운동선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별도로 책 한권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간 그의 책 이야기만 실컷하다 끝날지 모르니 여기에서는 그가 운동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만 하려고 한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의 취미는 마라톤이다. 시작은 달리기로 시작했다가 어느덧 마라톤 선수같은 실력을 갖춘 런닝 대표 작가다.
내가 글 쓰는 삶을 살아야겠다 생각하면서 거의 동시에 함께 맘 먹은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몸을 움직이는 삶을 놓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다. 하루키에게 달리기가 있는 것처럼 나에겐 어떤 종목이 좋겠다라고 꼭 정한건 아니었다.
퇴근 후 요가를 설렁설렁 13년 하다 종목을 바꿔 헬스 5년차에 접어들고 보니 이제는 알 것 같다. 나는 근력 운동을 친구삼아 평생 살아가기로 했다. 헬스장은 나의 놀이동산이요. 덤벨은 소장하고 싶은 장난감이다.
3.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는 소설가의 운동 철학이 담겨있다.
믿기지 않지만 하루키는 올해로 70대 중반이다. 한 소설가가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달리기를 해 왔는지 그의 에세이에 잘 나와 있어서 종종 찾아보는 구절이 있다.
'소설가에게 필요한 집중력과 지속력은 고맙게도 재능의 경우와 달라서, 트레이닝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그 자질을 향상시ㅕ 나갈 수도 있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집중력과 지속력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된다. 근육의 훈련 과정과 비슷하다.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며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 한계치를 끌어올려 간다.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씩, 그 수치를 살짝 울려간다.
이것은 매일 조깅을 계속함으로써 근육을 강화하고 러너로서의 체형을 만들어가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작업이다. 자극하고 지속한다. 또 자극하고 지속한다. 물론 이 작업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만큼의 보답은 있다. '
그는 몸을 공부하는 소설가다. 누구나 운동할 수는 있지만 어떤 마음으로 운동을 하는지는 사람마다 각자 다르다. 내가 운동하는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도 어쩌면 이런 명문장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기만의 운동 철학이 있는 사람. 그 철학을 한권의 책에 담아내 공유해 주는 사람. 글쓰며 운동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분야다. 몸이 묻고 마음이 답하는 풍경이 각자의 글속에 담겨있다.
4.
지식노동자일수록 자신만의 운동 종목이 필요하다.
"막 전업 소설가가 된 내가 맨 처음 직면한 심각한 문제는 건강의 유지였다. 본래 주의하지 않으면 살이 찌는 체질이다. 지금까지는 매일매일 격렬한 육체노동을 해왔기 때문에 저체중의 안정 상태로 머물러 있었지만, 아침부터 밤중까지 책상에 앉아서 원고를 쓰는 생활을 하게 되자 체력이 점점 떨어지고, 체중은 불어났다.
신경을 집중하는 와중에 나도 모르게 담배도 지나치게 피우게 되었다. 그 무렵에는 하루에 60개피의 담배를 피웠다. 손가락도 누렇게 되고, 온몸에서는 담배 냄새가 났다. 이것은 아무래도 몸에 좋지 않았다. 이제부터의 긴 인생을 소설가로 살아갈 작정이라, 체력을 지키면서 체중을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루키는 달리기만의 몇가지 이점이 있다고 한다. 첫째로 동료나 상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특별한 도구나 장비도 필요없다. 특별한 장소까지 가지 않아도 되고 달리기에 적합한 운동화만 있으면 된다. 근처 적당히 달릴만한 도로가 있으면 마음 내킬 때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릴 수 있다.
테니스는 테니스 코트가 있어야 하고 수영은 수영장을 찾아 가야 한다는 것과는 다르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래서 거의 망설임 없이 혹은 선택의 여지가 없을만큼 달리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직장인인 나는 거의 매일 앉아있는 환경에 놓여있다. 일주일에 몇번씩 출장을 다니기도 하지만 이동 시간을 제외하면 또다시 앉아서 회의하고 사회보고 듣는게 대부분이다. 고관절이 접힌 몸은 건강하지 못한 영혼을 불러올 것만 같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달리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다.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작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력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직장인이 운동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한 트럭이다. 하지 않겠다고 맘을 먹으면 오늘부터 당장 그만 둘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을 살고 말게 아니라면 난 운동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냥 매일매일 반복된 동작만 하는 운동은 금방 지겹기 마련이다. 뭐든지 쉽게 지루해 하는 사람에겐 특히 더 그렇다. 그럴땐 몸을 공부하며 나아가보자. 가고자 하는 길에 좋은 동무가 되어 줄 것 같다.
*관련책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