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라는 함께 사는 공간, 누구와 어떻게 같이 살까
플렛메이트(flatmate)가 인도인 남자를 계속 데려온다.
카타르항공에서는 숙소를 제공해 준다. 도하에만 백 개가 넘는 크루들만을 위한 건물들이 있다. 주로 두 명이서 플렛을 셰어(share)하고 각자의 방과 각자의 화장실이 있다. 가끔 세 명이서 셰어하는 플렛도 있고 화장실을 셰어하는 플렛도 있다고 한다. 나는 정리해고가 되기 전 2년 전에도 지금도 운 좋게 나만의 화장실과 그리고 한 명의 플렛메이트가 있다. 2년 전에는 사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플렛 메이트가 코로나로 해외에 갇혀서 큰 플렛을 혼자 썼다.
in Mansoura
리조이닝을 해 돌아와 인도인 플렛 메이트를 배정받았다. 그녀는 아주 털털하고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친근한 성격을 갖고 있다. 처음 플렛을 들어왔을 때 그녀는 긴 미국 비행을 가 있어서 며칠이 지난 후에야 보았다. 그전에는 일본인 플렛메이트인가 싶을 정도로 집이 정말 깨끗했고 틈틈이 일본어가 보였다. 알고 보니 내 전에 살았던 크루가 일본인 크루라고 했다. 의문인 건 그 둘 사이에 문제가 있었는지 그 일본인 플메가 리자인을 한 건지 다른 숙소로 옮긴 건지조차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그 둘 사이에는 서로 소통과 연결이 없었던 듯싶다.
in Sydney
난 호주에 살 때 인도인 동료들과 함께 일을 했다. 빨리 일하려는 나에게 It's okay Lizzy. 아주 느긋하게 답하며 난 문제를 해결하려는데 괜찮다니 답답함과 동시에 느려도 괜찮음을 느꼈다. 기다림도 있을 수 있구나.
그랬던 덕일까 처음 카타르를 왔을 때 곳곳에서 만나는 인도인들과 잘 지내었다. 가장 친한 인도 친구도 생겨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자주 만나며 도움도 많이 받았었다. 그러기에 아무리 악명 높은 인도인들에 관한 안 좋은 소문들이 자자했지만 인도인 플렛메이트만 안 걸리면 될 거라고 하는 주변의 말에도 난 인도인 플렛메이트인 것을 알게 되고 사실 좋았다. 인도 리쉬케쉬에 가서 요가를 수련하고 싶었고 인도 문화에도 항상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 요리도 해주며 가끔 차도 마시고 얘기하며 잘 지내고 있었지만 그 틈 사이사이에 내가 불편했던 상황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나의 불편함을 용기 내 말한 나에게 그걸 이해 못 한다는 그녀는 충격적이었다.
나는 스탠바이였고 숙소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몸도 좋지 않아 집에서 쉬고만 있는데 아침부터 인도 남자애를 데려와 주방에서 시끄럽게 요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 냄새에 소음에 힘들어 같은 건물에 사는 친구네 플렛으로 피신을 하여 쉬다 저녁에 집을 들어왔다. 그리고 그날 밤 사실은 내가 쉬는데 남자인 친구를 데려오는 게 불편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자기들이 시끄러운 노래를 틀거나 파티한 것도 아니고 조용히 밥만 먹은 것이고 자기 쉬는 날 친구를 데려올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였다. 이렇게 또 argument 언쟁이 시작되었고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난 respect 존중이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존중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하였고 말을 할수록 난 속이 터졌다.
그렇게 언쟁을 하다 나에게 저녁 먹었냐며 아까 저녁을 만든 음식 달을 남겨놓았다며 먹으라고 하였다. 그러고 나서 석사과정 중인 그녀에게 일단 공부 잘하라고 하고 서로 굿나잇을 하고 또 어떻게 잘 넘어가고는 했다.
그리고 몇 주 후,
나도 쉬는 날, 그녀도 쉬는 날. 거실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어제 점심에 내가 한국인 친한 언니를 데려와 점심을 먹었을 때 자기가 나가기 직전이었는데 아침에 더 잘 수 있었는데 시끄러웠다며 그리고 요리할 때 주방 문을 닫아라, 창문을 열고나면 먼지가 들어오니 닦아라 등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난 이미 네가 일어난 시간인 걸 알았다고 트레이닝을 가지 않았냐고 했고 다른 것들은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갑자기 누군가 와서 보니 그녀의 방의 에어컨을 고치러 메인테넌스 아저씨들이 와서 내가 문을 열어주었다. 잠시 난 방에 들어와서 쉬다 아직 아저씨들이 안 갔나 소리가 나서 거실에 나와보니 예전에도 데려왔던 그 인도 남자를 또 데려와 밥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난 오는지 전혀 몰랐는데 나에게 아까 말을 했다며. 난 들은 적이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또 언쟁은 시작되었고 또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관점들에 부닥쳤다. 내가 비행을 갔을 때나 내가 없을 때 데려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그와 상관없이 자신은 언제든 데려와도 괜찮다는 건데 나를 이해 못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나에게 혼자 해결하고 회사에 말하라는 것이다. 이럴 수가. 주변에 플렛메이트와 싸워 하우징에 말하고 옮기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게 나에게도 곧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난 사실 처음에는 이 플렛메이트가 좋아 다른 좋은 건물로 이동을 하고 싶기도 했지만 옮기지 않고 여기서 오래 살 가능성도 있겠다 싶었는데 또 이런 순간이 오니 6개월 되자마자 옮겨야 하나 싶기도 하다.
처음 입사를 하고 6개월 후에 숙소 변경 요청을 하고 원하는 숙소로 옮길 수 있다. 난 전에도 지금도 만수라 동네인데 무쉐립이나 미르캅 같은 좋은 동네에 살아 보고 싶었던 참에 잘 된 것 같기도 하다. 어쨌는 안 좋게 헤어지는 것은 좋지 않지만 인샬라.
in Dublin
내가 아일랜드에서 한인 여자 셰어 하우스에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 규칙이 남자를 데려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몰래 데려왔던 적이 있는데 그 카르마가 돌고 돌아 지금 이 인도 플렛메이트가 인도인 남자를 데려오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인가. 다 과거의 내 잘못이다. 반성하자.
in Seoul
아무리 월세가 비싸고 관리비, 수도세, 전기세, 도시가스세, 와이파이 모든 것을 내도 혼자 자유롭게 살던 서울 도시 중심의 스튜디오 생활이 그립다가도 또 지금 이런 경험을 하는 것마저도 내 생에 이런 일이 언제 있을까 싶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나의 입장을 이해하고 플렛메이트가 저래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또 그녀의 친구들은 그녀의 편에서 이해를 하고 내가 이해할 수 없다지만 우리는 모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존재이고 이런 문제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내 마음은 그녀가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사실 그 이전에 우선순위는 숙소에서의 휴식할 수 있는 나의 평온이다. 나의 편안함을 위해 그녀에게 나의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을 해야지 그렇지 않다면 나의 불편함을 그녀는 전혀 알지 못할 것이고 나만 참아야 할 것이다.
또 비행시간이 겹치지 않아 비행을 바쁘게 하다 자주 보지 못하면 떨어져 있을 때, 때로 생각이 바뀌기도 한다. 현재 도하에 온 지 네 달이 다 되어간다. 몇 달 후 과연 난 이곳에 살고 있을까 다른 숙소로 옮길까. 어딜 가든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있어야 한다. 서로에 대한 기대와 기준도 문화도 굉장히 다르기에 쉽지 않은 환경이지만 이 또한 재밌는 삶이다.
그리고 한 달 후,
결국 내 스스로를 위해 회사 하우징 팀에 연락을 했고 이사가 확정됐다.
What a miracle!
in Bin Mahmoud
삶의 질이 올라갔다.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숙소 중 이렇게 시설 차이가 큰가를 직접 경험했다. 이사 비용도 들고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여러 절차에 힘들어도 한 번 이사하고 나면 앞으로 삶이 더 윤택해진다. 인상을 찌푸리는 일이 줄어들어 얼굴에 주름도 예방이 되었고 무엇보다 마음이 훨씬 평안해졌다. 도하에서 최첨단의 환경에 야외 수영장과 넓은 헬스장 시설에 언제든 내가 물에 뛰어들거나 운동을 하고 싶으면 갈 수 있다. 비행도 힘든데 집에서만이라도 잘 쉬고 평안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선물은 고통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온다는데 이런 선물을 받으려고 만수라에서 경험을 한 것 같다.
사는 환경은 참 중요하다. 내 소중한 몸과 마음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인지. 그렇지 않다면 더 나은 곳으로 우리의 소중한 몸을 살게 하자.
Rest your body and mind in the peaceful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