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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Sep 25. 2024

22. 시인과 수녀

Poem



여름방학이었다

사촌 은주가 놀러 와서 함께 잔 날이었다

밤에 수박을 통째로 긁어 얼음과 미숫가루를 넣은 화채를 온 식구가 배불리 먹었다

마루 한쪽에  놓여있던 요강이 넘실넘실 차올랐다

은주와 나는 새벽에 같이 잠이 깼다

요강 뚜껑을 여니 오줌의 수위가 딱 한 사람 것만 담을 것 같았다

우리는 먼저 앉으려고 서로 밀치며 싸웠다

그만 요강을 털썩 엎어버리고 말았다

찌릉내가 삽시간에 좁은 마루에 차올랐다

객식구를 포함한 여섯 식구의 오줌이 흘러 흘러 끝 간 데 없이 퍼져나갔다

꿈이었으면 했다

맨발이 오줌에 절어 자박자박 발을 옮길 때마다 오줌 발자국이 찍혔다

우리는 작은 손을 동그랗게 모아 바닥에 고인 오줌을 쓸어 요강에 담았다

적막 가운데 날이 새도록 오줌을 치웠다     


큰고모 장례식장에서 수녀복을 입고 있는 은주를 만났다

오목하게 쥔 손가락 사이로 흐르던 노란 오줌물이 떠 올랐다

밤새 온몸을 돌고 돌아 걸러진 말간 수박향도 나는 듯했다

내 손을 잡고 안부를 묻던 은주도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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