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울 당신에게.
방황을 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서 마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살아있다는 근거이며, 나는 이것을 자신을 찾는 여정이라 표현한다. 방황에서 끝을 찾아내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의 본질을 정의하기 위한 행동이며 개개인을 특정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점에서 끝없는 여정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삶의 주체가 자신이며, 그것이 중요한 이유를 과제로써 끊임없이 탐구해야 하고, 이는 곧 누구나 방황을 하지만, 그것에 대한 표현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너무 먼 길을 걸어와 돌아가기 어렵다고 느끼거나 방황을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그 방법을 모르시나요?
그것이 방황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래서 스스로에 대한 해답을 찾으셨나요?
당신을 취조하는 기분을 받으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저는 단지, 저와 같은 ‘자신을 찾는 여정’의 여행자로서
또 먼저 그 길을 걸어봤던 사람으로서 구체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여쭙게 되었습니다.
저의 경우, 여정이 유독 길었었는데, 주변에서는 저를 보고 뒤늦은 사춘기라고 할 정도로 꽤 오랜 기간 고립되어 있었죠. 그만큼 저의 흑역사도 꽤 긴 편입니다. 시작은 한참 예민한 학창 시절에 느끼던 외로움이나 본인에 대한 결함을 인지한 이후에 방치를 했다는 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점점 자라나는 또래와 달리 저는 오히려 퇴화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이해하지 못해서 답답하고 또 그것을 해내지 못하는 제가 참 미웠습니다.
제가 여정을 마무리할 때, 저의 주변엔 사람이 없었습니다. 긴 여정의 끝에서 느낀 것들, 여정의 시작 전 힘들었던 저의 입장 등등 저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연했죠. 그들은 제가 아니기 때문에 또 제가 여정을 했다면 다른 이들도 분명, 여정을 시작했거나 여정의 중간에 있었을 테니까요.
제가 여정을 마무리하고 빠르게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사실들을 인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에 대한 타인의 입장, 멀어진 인간관계, 가족과 소통의 부재 등등의 이유에서 저의 책임도 있었음을 인정하고, 제게 도움을 주려고 손을 내밀었던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부분도 인정을 했습니다.
생각보다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죠.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한다면 저의 여정기에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악의적인 행동이나 개개인의 입장에서의 불편함을 저한테 표하지 않았고, 내버려 두었으니까요. 저는 그것을 배려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자의적인 거리 두기를 유지했던 시간만큼 타인에게 다가가기 위한 시간 또한 길 것이라 생각했고, 천천히 제 걸음에 맞춰 다가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도 노력 중입니다.
아, 인정했던 부분 중에 제일 중요한 부분이 있었던걸 말씀을 안 드렸네요.
제가 남들보다 더디고, 어수룩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지금의 상황을 내 의지로 고쳐나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당신의 방황이 부정적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아직 여정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당신이 돌아갈 길을 모르는 이유가 방황이 길어졌기 때문이라면 오해라고 알려드려야 합니다. 방황은 누구나 하는 것이고 그게 길어진다는 것은 아직 스스로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방황의 시작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구태여 알 필요가 없습니다. 당장 벗어나고 싶은 또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고립된 기분을 느끼고 있는데, 방황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을 리 만무하죠. 그렇지만 우리는 그 중간에 혹은 마무리를 하려고 할 때, 방황에 대한 의미를 되새김하게 됩니다.
방황의 시작과 끝에 항상 자신이 서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자신을 찾는 여정’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그러기에 조금 방황이 길어져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찾게 될 의미가 매우 크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