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동그란 검은 것.

부정이 된 가능성.

by 이랑

내 생각에 나의 ‘작고 동그란 검은 것’은 아주 어릴 적부터 나와 함께 있었다.

처음에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나는 그 작고 동그란 검은 것을 ‘또 다른 나’로 여겼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의 내가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본질이 되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 대한 가능성. 그것은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것에 기초이자 핵심이겠죠. 그렇다면 '작고 동그란 검은 것.'은 가능성의 씨앗일 겁니다.

그것이 왜 검고 둥글고 작게 되었는지 생각해 본다면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저는 이것을 실패에서 원인을 찾았습니다. 가능성이 열려있고, 그것이 행동하게 된다면, 행동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릅니다.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죠.


이러한 반응은 유년시절 꽤 크게 반응한다고 확신합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내게 애정을 쏟고, 보호하는 이들은 걱정과 우려의 마음으로 행동을 제한하게 됩니다. 그것이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실패가 되는 것이죠. 이러한 실패는 평소엔 잠복하고 있다가, 비슷한 기운에 반응을 하는데, 사람이 성장하면서 배우게 되는 도덕과 윤리, 그리고 공동체에서 오는 반응들이 제일 가깝습니다.


쉽게 말해, 내가 좋아서 하는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불편이 되고, 또 어떤 것에서는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평가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죠. 그것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다 보면, 우리는 실패에 대해서 크게 느끼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는 곧 자신에 대한 가능성을 닫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겠죠.


가능성이 닿는 대로 움직이는 개인의 사고와 행동이 제재되는 것이니까요.


보편적으로는 이것을 훈육, 교육이라고 이야기하고, 이에 대해서 크게 느껴지는 바가 없겠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누구나 가능성이 닫힐 수 있다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학창 시절 어떤 사건이나 계기에 휘말리면, 우리는 어두운 그림자를 얼굴에 드리우게 됩니다.


여기서, '작고 동그란 검은 것'에 '작다'는 위축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 작은 씨앗이 더 작아지고, 더 깊숙이 숨어버리기 때문에 알아채기는 더욱 어렵게 되겠죠. 그래서 방황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필자 본인만의 경험을 스스로 관찰, 분석해 본 생각입니다. 이것이 보편화된 사고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분명, 소수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들과 다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이야기하자면, 저는 이러한 저의 과정을 방황이라고 하지 않고 자신을 찾는 여정이라고 합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연속성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자신을 찾는 여정은 몇 번이고 찾아오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여정의 시작은 '작고 동그란 검은 것.' 즉, 부정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부정을 통해 방황을 하고, 성장하게 됩니다.

이는, 사람이 성인(成人)이 되기까지의 경험이기도, 성인(聖人)이 되기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거창한 길이 아닌, 성인(成人)까지의 보편적인 경험을 하기 위한 소수들의 자립(自立), 그것의 필요성을 스스로 깨닫는 길로 이해하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부정은 필수적으로 작용하는 핵심이라고 설명드립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가 없이, 의사가 없이 시작된 부정을 꽤 어릴 적 혹은 혼란스러울 시기에 맞이하고, 상처를 입습니다. 그래서 다수는 우리를 보고 환자라고 부릅니다. 본인과 보편적인 시각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환자가 아니라, 단지 가능성이 너무 커서 개화하는 데까지 비교적 오래 걸리는 것뿐이라고. 그저 껍질이 두꺼워서 깨고 나오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라고.


당신께서 주변의 소음과 배척에 깊은 상처와 지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저는 이해합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맴돌며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이해합니다. 그러한 것들의 인식을 단순히 단어만 바꾼다고 해서 그 힘듦이 줄어들지 않을 것도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당신의 그 큰 가능성이 화려하게 개화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워 훈수를 두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가장 힘들 때,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것을 해주고 싶어서, 저는 이것을 동정하고 위로하기 위해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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