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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Apr 18. 2022

나무늘보 여인의
작은 이야기  

1. “참 편안하고 따뜻한 바닥이야."

2014.02.24


장판은 역시 노란 장판이 좋다. 가장 무난하고 익숙한 집의 바닥 색이어서 그럴까. 지금 지내고 있는 나의 원룸 바닥도 노란 장판이다. 노란 장판은 왠지 따뜻해 보이고 살붙이고 싶어 진다. 왜 장판은 노란색이 처음부터 대세였을까? 옛날 기름 먹인 바닥 색과 비슷해서였을까? 


그 이유와 역사를 찾고자 검색을 해 보았더니만, 앞선 나의 생각이 민망할 정도로 노란 장판은 인테리어 계에서 최악이자 공포의 대상이기까지 하다. 칙칙해서 무엇을 올려놓아도 수습 불가능한 바닥. 남루한 바닥. 이제 더 이상 찾는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요즘은 거의 시공하지 않는다. 


노란 장판이 노란 이유는 때가 잘 타지 않고, 공간이 넓어 보이며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무난함 때문에 널리 쓰였던 것이다. 요즘은 과도기에 있었던 나무무늬 우드륨을 거쳐 실제 나무 바닥 같은 느낌의 장판이 세련되게 잘 나오는 모양이다. 나도 굳이 노란 장판을 쓰고 싶지는 않을 것 같은 좋은 장판들이다.  

북유럽 풍 인테리어가 카페를 거쳐 가정집까지 붐을 일으키면서 노란 장판은 이제 한물 간 유물이 되었다.  


항상 집에서 책상도 없이 앉아서 또는 엎드려서 누워서 지내던 옛날 나에게 오래도록 일상적인 장판과의 스킨십은 그것이 마치 누군가의 살결인 마냥 이상하게 강렬한 이미지를 기억하게 한 것 같다.  

그리고 그 노란 장판의 이미지는 따뜻한 체온을 지니고 있다.   

따뜻한 장판 바닥에 꽃 이불 덮고 엎드려서 비디오를 보며 끊임없이 노란 귤을 까먹던 겨울이 있었다.  

언니들과 번갈아가며 베란다로 귤을 퍼 담으러 나 갔다 와야 했는데, 그때 베란다 문 열기가 어찌나 싫던지 말이다. 찬 공기에 발바닥이 짜릿짜릿하였다. 그리고 곧 다시 발을 이불속에 넣으면 뜨끈하게 황홀함이 온몸에 퍼졌다.  

엄마는 항상 방바닥을 바삭바삭하게 만들어 놓으셨다. 여름엔 그 바삭한 방바닥에 몸을 붙여 뒹굴 거리며 체온을 나누어 식혔다. 방바닥의 얼룩과 자국들을 마주 보고 온갖 상상들을 하면 시간도 잘 갔다.

나뭇결 등 무언가를 흉내 낸 다른 바닥들과 달리 노란 장판은 자체로 그저 장판인, 나에게 장판으로서 유일한 체온을 가진 장판이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방바닥 같은 그 장판을 질색하며 피하는 바람에 더 이상 보기는 점점 힘들어지겠지만, 그 상황이 살아있던 살결을 가지고 나를 보듬어주던 누군가가 당연한 순리로 생명을 다하는 것처럼 여겨져서, 널리 애용되는 장판일 때 보다 더 애틋함을 느끼게 된 것 같다. 

노란 장판과 더불어 체리 색 몰딩과 붙박이장, 은은한 무늬가 들어간 하얀 벽지의 쓰리 콤보가 진부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나의 원룸 생활도 언젠간 애틋함으로 기억되는 때가 있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으려나.       

[출처] 1. 나무늘보 여인의 작은 얘기 - “참 편안하고 따뜻한 바닥이야.”|작성자 onlyweek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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