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화로운 동네였던 경기도에 살던 나는 명절마다 친가인 서울에 가야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친척들이 사는 그곳, 서울 마포구 동교동.
끼익 무겁게 열리는 철문소리와 정겨운 마당, 2층으로 된 할머니댁은 어색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그리운 곳이었다. 나는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좋아했다. 작은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면 1층이 나오는 구조는 최고의 놀이터였다.
마당으로 나가면 삽으로 마구 흙을 퍼 나르며 놀았고 주택 특유의 냄새가 좋았다. 아파트에서만 살았으니 아마 더 신기하고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는 집을 팔고 연희동의 아파트로 이사하셨기에 나는 더 이상 그 집을 볼 수 없었다. (지금은 그 자리가 카페로 바뀐 듯하다)
2. 고등학교 3학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의 얼굴은 내가 알던 얼굴이 아니었다. 할머니댁 2층계단에서 어린 나를 반기던 할머니도 그 집도 더 이상 볼 수없게 되었다. 그 후 맞는 명절부터는 연희동의 아파트로 가게 됐다. 1년에 두어 번씩 가는 연희동은 해가 갈수록 더 복잡해지고 차들도 사람도 많아졌다. 도로도 늘 바뀌고 크고 새로운 건물들도 많아졌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홍대 근처에 진입할 때면 숨이 턱턱 막히곤 했다. 나는 홍대역을 지나 연희동으로 가는 길에 늘 똑같이 생각했다.
'이런 곳에서는 절대 못 살아'
3. 집을 좋아하고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충전이 되는 극내향인인 나에게 홍대입구역은 생각만 해도 기가 빨리고 사는 맛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곳이었다. 매연냄새도 쉴 새 없이 다니는 버스들과 온갖 쓰레기들이 버려진 더럽고 좁은 인도도 싫었다. 부딪히지 않기 위해 늘 긴장하며 다녀야 되는 것도 말이다.
4. 부모님의 이혼 후 우리 가족은 다 뿔뿔이 흩어졌다. 고로 나도 홀로 살 곳을 찾았고 살던 곳과 가까운 곳에서 1년을 살았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월세계약이 끝난 후 나는 새로 살 집을 찾아야 했지만 수중에 돈이 많지 않았다. 돈이야 벌어서 구하면 됐겠지만 당시 나는 무기력한 상태였다. 부모님의 오랜 불화로 많이 지쳐있던 상태였다. 아빠는 나를 짐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고 멀리 사는 엄마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다. 나는 그때 할아버지댁이 생각났다. 아직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가족이 사는 곳에서 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그 이듬해 겨울, 연희동 할아버지댁으로 들어갔다. 절대 살고 싶지 않았던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