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대에는 연애를 쉬어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20대에 연애를 하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그 반대라고 하기도 하는데 지금의 나는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집을 좋아하는 집순이인 데다가 편하고 익숙한 사람들만 만나고 싶어 하는 성향이라 새로운 누군가와 깊이 친해지는 연애가 많은 면에서 사람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들이었다.
2. 20대 초중반까지는 헤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적었다. 물론 그때에도 헤어짐은 쉽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이제 막 서른이 된 내가 헤어짐이 힘든 이유와 20대 초반 헤어지기 힘들어했던 이유는 그 성질이 다르다. 지금 헤어짐이 힘든 이유는 좋아하는 그 사람을 잃어서가 아닌 에너지의 고갈 때문이고 20대의 내가 헤어짐이 힘들었던 이유는 그 사람을 잃게 된다는 것에서 오는 것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헤어져!'는 그때의 것이었다. 물론 나는 서른이 넘으면 사랑에도 미적지근한 태도가 된다는 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서른 넘으면 싫다는 사람 안 잡고 상대방에게 올인하지 않아-라는 말도 멋지다 생각하지도 않는다. 고작 삼십 년 조금 넘게 살았다고 현명해진 듯 말하기도 싫다. 사랑은 애초에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게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연애가 끝난 후에 에너지의 고갈이 싫은 게 아니라 또 누군가에게 실망하고 누군가로부터 거절당하는 게 힘들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연애가 아니더라도 삶의 무게가 늘어나는 나이니까. 그리고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마음은 더 나약해지나 보다. 달리기도 전에 까지게 될 무릎부터 걱정하니 말이다.
클라우드를 보다가 발견한 커플링 사진이다
3. 앞선 이야기에서 짧게 이야기했던 홍대에 와서 헤어진 오래 사귄 남자친구는 20대 초반쯤 만난 친구였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이었고(학교에서는 서로 본 적이 없다) 처음 본 건 그 친구가 군 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연애를 시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설레어하다가 연애를 시작했다. 군대에 있는 건 문제가 되진 않았다. 멀리 군면회도 가보고 전역날에는 꽃과 꽃신도 받았다. 그때 만났기에 할 수 있던 것들이었다. 그 친구와 나는 많이 싸웠다. 헤어질 거라는 소리도 참 많이 했다. 길거리에서 싸우고 서로 씩씩대며 다른 방향으로 간 적도 있었고 울며불며 커플링을 뺀 적도 있었다. 그 친구와는 내가 홍대에 와서도 쭉 만남을 이어갔는데 나는 20대의 거의 절반을 그 친구와 함께 했던 터라 그 친구와 당연히 결혼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결혼에 대한 확신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결혼을 생각하니 이런저런 걱정거리가 생겨났다. 그 친구의 어떤 습관들이라던지 나와 다른 가치관 같은 것들이 마치 소화 안 되는 음식처럼 계속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헤어짐을 준비하지는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를 하는 것이 당연한 루틴이듯 그 친구도 당연한 루틴 중 하나였다.
4. 홍대에 온 후 가족들과 다 뿔뿔이 헤어진 나는 내가 살던 곳보다 더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에 있지만 더 외로워졌다. 고향과의 연결이 끊어졌다고 느꼈던 나에게 그 친구는 내가 잃지 않은 원래의 어떤 것들 중 하나였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그 친구를 만나는 날이 좋았다. 헤어진 가족을 만나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도 특별한 만큼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커플이었다. 나는 헤어질 당시 회사에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그 친구는 취업준비를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던 때였다. 나는 그런 외롭고 힘든 상황에서 의지할 수 없는 그 친구에게 헤어짐을 말했다. 그 친구는 불같이 뜨거운 성격이 아니었기에 헤어지자는 말에 차분하게 수긍했다. 그 태도가 서운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힘든 이별은 아니었다. 지금도 그 친구가 종종 생각나면 고마운 마음이 든다. 20대의 나는 그 친구와 헤어진 나를 상상할 수 없었지만 나는 헤어졌고 헤어질 줄은 몰랐었고 헤어졌음에도 그 친구가 밉거나 싫지 않다. 그건 아마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 친구가 좋은 친구였기 때문일 것이다.
5. 모든 연애는 결국 헤어지게 될 사람이다 하고 시작하지 않아서 힘들고 또 사랑스럽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이곳 홍대에 살아도 결국 만나는 사람은 단 한 명이라는 것도 당연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특별하다. 당신도 누군가에게 그 한 명이고 나도 그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