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할아버지댁에 살 때에 나는 홍대에 한 악세사리점에서 일을 하다 코로나로 실직을 하게 됐다. 중국인 관광객과 일본인 관광객으로 가득 차던 가게는 텅 빈 가게가 되었다. 가게뿐만이 아니라 거리도 그랬다. 독감이 유행하는 정도로 끝나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사장님과 코로나 바이러스를 조심하라는 말을 주고받다가 나중에는 결국 마스크를 매일 써야 했고 관광객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지나 보면 인생은 예상한 일들보다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더 많이 채워져 있다.
2. 실직을 하고 나는 갑작스럽게 실업자가 돼서 그맘때쯤 이유 없는 기침을 달고 살았다. 가슴이 답답해서 기침을 하지 않으면 속이 딱딱하게 굳는 기분이었다. 병원에 가서 폐활량검사와 여러 검사를 해봤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깊은 우울과 스트레스가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났었던 것 같다. 실업자에 병자까지 되었다고 생각하니 고약한 이십 대의 시험관이 죽어라 죽어라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3. 나는 모아둔 돈과 아빠의 도움으로 일을 당장 구하지 않아도 됐었다. 하지만 몇 달 후 외가 쪽 친척오빠에게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카페 인테리어 보조와 디자인, 마케팅까지 전반적인 일을 부탁받았는데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림을 그렸기에 새로 오픈할 카페의 이미지를 디자인하는 일도 하고 싶었다. 훗날 이 일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없고 도움이 됐다고도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이때 나는 양재로 가는 지옥철을 아침저녁으로 타야 했다. 회사생활은 처음이었기에 이른 아침에 직장인들 사이에 껴서 출근을 하는 건 처음이었는데 이때가 가장 힘들면서도 나 스스로 가치 있다고 느꼈을 때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4.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로 꼼짝없이 서서 전쟁터에서 살아남듯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그 지옥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도 아니었지만 사회를 굴리는 단단한 톱니바퀴 같은 그들처럼 된 것 같은 기분이 든 적이 많았다. 우울하면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이 느껴지는데 그때만큼은 내가 조금은 더 살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조차 삶이 주는 포상처럼 느껴졌다.
그 무렵 찍었던 사진. 작고 또렷한 꽃이 분명한 희망 같아서 아직도 참 많이 좋아하는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