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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Dec 11. 2024

정말 이혼할 줄은 몰랐지

이혼가정의 자녀가 되었다


1. 사랑이란 뭘까. 이 질문을 엄마와 아빠가 이혼도장을 찍었고 법적으로 이제 부부가 아니게 되었을 때 끝없이 했던 것 같다. 10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부모님의 사이는 이미 깨질대로 깨진 유리조각이어서 나는 그 조각을 이어 붙이려고 할 때마다 피가 났다. 피가 날 수 있음을 알았지만. 나중에는 피가 철철 나는 그 상처를 어떻게든 덮어두고 부모님이 이혼하시기를 바랐다.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이혼을 하라고 했다. 자녀한테 이혼하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문득 궁금하지만 나는 그 깨진 유리조각들이 즐비한 곳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2. 엄마는 아빠와 이혼하고 싶어 하지 않아 했지만 아빠는 이혼을 원했다. 아빠는 엄마가 이혼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할수록 더 강하게 이혼을 말했다. 만약에 엄마가 아빠에게 먼저 이혼하자고 했다면 아빠가 강력하게 이혼하자고 했을까? 이러나저러나 결국 이혼을 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이혼하자는 말을 들으면 꼭 그 사람을 사랑해서가 아닌 어떤 오기(?)가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내가 이혼당할 만큼 나쁜 사람인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어떻게 나한테 이혼을.이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일 테니까. 이건 부부사이가 아닌 연인사이에서도 똑같다. 내가 상대방을 많이 좋아하지 않아도 헤어지자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나는 엄마의 마음을 다는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엄마는 이혼을 했어야 했고 지금 생각해도 이혼은 엄마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백번 천 번 옳은 선택이었다.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 두 사람을 그렸었다.

3. 부모님의 이혼을 알게 된 건 엄마를 통해서였다. 엄마는 미안하다며 날 걱정했지만 아빠는 이혼했다는 말을 이혼한 지 몇 년이 흘렀음에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상처받을까 봐 그 말을 하지 못한 것 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혼에 대한 어떤 일언반구도 없다는 게 케케묵은 상처가 됐다. 이혼하지 않았던 지나간 시간들보다 지금이 훨씬 내 마음도 편하지만 뻔히 알게 될 이혼을 나에게 숨기려는 건 이혼보다 더 큰 상처로 남았다. 하지만 나도 그 상처를 아빠에게 드러내지 않았다. 모두들 상처 몇 가지 정도는 덮어두고 사는 것처럼 그렇게 살기로 한 것이다.


4. 엄마와 아빠는 주변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사이좋은 부부였다. 친척들도 엄마아빠 사이가 너무 좋아서 유난이다 싶을 정도였고 나도 어릴 때 두 분 사이가 너무 좋았기에 이혼이라는 건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두 분은 뜨겁게 연애했고 서로의 첫사랑이었다. 사랑은 무수한 것들을 끌고 나가는 최고의 에너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각자가 가진 사랑의 속성은 다 미묘하게 다르고 질과 부피도 다르다. 서로 다른 에너지라는 걸 확인했을 때 그때부터 관계는 다른 모습으로 진전되거나 퇴보한다. 내가 가진 사랑과 다른 모습에 슬퍼지거나 분한 마음이 들 수 있다. 나의 엄마도 그랬다. 많이 슬퍼했고 화도 냈고 억울해하기도 했다. 똑같이 나도 그랬다. 그것에서 파생된 내 우울도 아직까지 틈만 나면 고개를 들이민다. 하지만 죽을 것 같던 나도 엄마도 다 살아있다. 우리를 이끌어가는 건 한 사람의 사랑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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