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빠는 내 소울메이트였다. 오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나에게는 친구보다도 부모님보다도 더 가까운 존재였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고 피아노연주와 음악을 좋아했던 나의 친오빠는 잠이 들 때까지 재밌는 우주이야기라던가 역사이야기를 해준다던가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에 본인은 관심이 없더라도 열심히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해리포터를 영화보다 책으로 먼저 읽게 된 것도 책을 좋아하는 오빠 때문이었고 오즈의 마법사나 그리스로마신화 같은 이야기들을 좋아하게 된 것도 오빠 때문이었다. 나는 오빠와 하는 이야기들이 다 재밌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우리는 소소하고 사소한 이야기들로 웃고 울기도 하고 같이 무서운 영화를 보면서 담요를 눈 밑까지 올리고는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부모님의 불화가 깊어졌을 때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상처에 안타까워하고 그 상처를 위로했다.
2. 보통의 남매가 그렇겠지만 나와 오빠도 서로가 사춘기일 때에는 투닥거리고 싸울 때도 많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장난을 치고 서로 까내리는(?) 농담을 할 때도 있었는데 그 런 농담 중에 가장 흔한 농담이 "넌 누가 데려가냐"였다. 나는 오빠가 좋은 대학에 좋은 직장까지 나와서 성실하고 모난 구석이 없고 장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오빠가 결혼하는 것은 이상하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는 결혼을 하지 못할 것 같고 안 하고 싶다는 빈말을 해왔기에 더 그랬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긴 말이긴 하지만 말이다.
못난이 감자같은 나와 오빠
3. 오빠는 스무 살 초반쯤에 당시 고3이었던 내게 둘 다 35살까지 결혼을 안 하고 있다면 빨간 머리 앤의 커스버트 남매처럼 함께 살자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나는 설마 내가 35살까지 결혼을 못하겠나 싶어 그러자고 말했었고 오빠는 30살에 결혼을 했다. 그렇게 일찍 결혼할 줄은 몰랐는데 오빠의 결혼식까지 끝나고 났을 때는 친한 친구와 멀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빠는 어찌 됐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축하할 일이지만 어딘가 쓸쓸한 기분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4. 오빠의 연애와 결혼까지의 시간들을 마치 지난 일기를 되짚어보듯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되짚다 보면 인생이 나의 예상대로 흘러갔던 적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모든 판이 이미 짜여있는 것 같지만 뒤돌아보면 생각하지도 못한 실타래로 짜여있다. 오빠는 이런 사람을 만나서 이런 결혼을 할 것 같다는 나의 예상은 0.00001%도 맞은 게 없고 서른이 막 되어버린 나는 늦어도 29살에 결혼할 것 같다는 내 예상에 한참 빗나간 그냥 나이만 먹은 서른 살 일 뿐이다.
5. 나는 그래서 아직도 인생을 모르겠고 사랑은 더더욱 모르겠다. 나이가 들고 죽기 직전까지도 인생과 사랑에 대해서는 모르고 싶다. 다 알지 못하지만 즐거웠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그럴줄 알았지 보다는 그럴줄 몰랐지라고 말하는게 더 재밌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