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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Dec 31. 2024

작은 세상인 줄은 몰랐지

내가 보는 세상은 여전히 작다는 걸


1. 원래 살던 곳은 경기도 용인이었는데 초, 중, 고등학교가 밀집되어있는 곳이었다. 그랬기에 주민들 대부분은 아마 학생이 많았을 것이고 독립된 1인가구보다 가족단위로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곳은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는 그런 모습이 익숙했다.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을 하고 부모님과 같이 살던가 그게 아니라면 잠시 독립을 했다가 결혼을 해서 그곳에서 다시 가족을 꾸리는 그림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서 서울로 온 후  보고 느끼고 생각하던 것들의 대부분이 허물어져 갔다.


연남동의 수많은 전선들이 마치 오선줄 같아 보였다.

2. 그러니까 내 세상은 한없이 작고 단순했던 것이었다. 홍대에 살며 만났던 사람들은 마치 어린 왕자가 7개의 행성에서 만난 사람들 같았다.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고... 같은 생각은 홍대에서 처음 일했던 곳의 사장님을 만난 후 허물어졌다. 글을 쓰며 문득 드는 생각인데 책 속에 세상이 있다는 말이 있지만 결국 그 세상에 뛰어들어 피부로 느끼려면 책을 덮고 고개를 돌려 주위를 보고 발걸음 떼어 사람을 마주 대해야 한다. 미혼의 사장님은 줄담배를 피며 하루종일 거의 일에만 몰두하는 분이셨는데 그분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도 불행해 보이지도 않았기에 나는 삶이란 게 꼭 행복하지 않아도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머리카락에서 나는 독한 담배냄새를 맡아보고 그 사람의 눈동자를 보며 이야기를 해봐야 비로소 다른 삶에 닿아볼 수 있다.

당시 다양한 인물들을 그렸었는데 입체적인 인물을 그리는것이 즐거웠다.

3. 지금도 내 세상은 좁고 단출할 것이다. 나는 한국에, 서울에, 홍대부근에 살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지에서 나보다 몇십 배는 더 큰 코끼리를 본 적도 없고 인적이 드문 들판에서 양을 몰거나 치즈를 만들며 석양을 바라본 적 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불행도 아주 작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이 들자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다. 나의 행복도 먼지같이 작은 것일 테고 나의 불행도 티끌처럼 작은 것일 테다.


4. 홍대는 유난히 젊은 이들과 여행객들로 붐빈다. 오늘 본 사람을 내일 다시 마주칠 확률은 적고 지하철에서 어깨나 발이 치이거나 밟혀도 이젠 그러려니 한다. 인생에 정해진 답이 있어야 편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정해진 답이 없는 게 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홍대살이는 나에게 빈 공간을 채워야 하는 아주 크고 넓은 시험지 같다. 정해진 답은 없지만 글자를 채워 넣을 수 있는 공간은 넓어서 끝도 없이 써 내려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 썼다고 생각한 글을 지우기도 했고 고쳐쓰기도 했다. 때로는 답 없는 그 시험지가 막막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결국 다 괜찮다. 그 시험지도 결국 아주 작은 시험지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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