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로서 정명석의 보편적 학습설계로서의 역할
우영우를 비정상이 아닌 정상의 범주로 분류하는 정명석 변호사
푸코에 의하면 원래부터 그런 것은 없다.
푸코 생전에 원래부터 동성애자가 정신병원에 가야 할 사람은 아니었고, 원래부터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은 변호사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명석 변호사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이러한 통념들 위에서 편견을 갖게 되지만, 우영우라는 유일한 개인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통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물론 그가 처음에 우영우가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한바다라는 대형 로펌에 들어온 것에 의문을 갖는 것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당연하다.
정 : 대표님께서 보낸 신입 변호사가 왔습니다. 혹시 이력서 뒷장도 보셨습니까? 자폐라고 적혀있다던데요... 아 보셨는데도 이런 친구를 보내신 겁니까?
대표 : 변호사님이야말로 뒷장에만 꽂혀서 앞장 안 보신 거 아니에요? 서울대 로스쿨 수석에 변호사시험 1500점 이상. 이런 인재를 한바다가 안 받으면 누가 데려옵니까?
정 : 암기력만 뛰어나도 성적은 나옵니다. 저는 의뢰인 만날 수 있고, 재판 나갈 수 있는 변호사가 필요한데.. 사회성도 필요하고, 언변도 필요한데, 자기소개도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가르칩니까?
대표 : 변호사님 첫 출근에 자기소개 잘했어요?
정 : 그러니까 제 말씀은 ‘저랑은 다르지 않습니까?’
그러나 정명석 변호사는 그러한 편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주고, 그 기회를 잡은 우영우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편견이 잘못됐음을 인정할 수 있는 ‘태도’를 지녔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정명석이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구별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 지점이 우영우에게 있어 정명석이 보편적 학습설계의 기제로서 작동하게 만든다.
정명석이 없다면, 우리의 시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우영우란 존재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담론과 통념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우영우는 우영우로서 설명되지 못하고, ‘비정상’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그렇지만 정명석이 있기에 우영우는 우영우로서 설명될 수 있고, 변호사라는 전문직 집단에서 충분히 변호사로서 기능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권모술수 권민우가 ‘공정’의 논리로서 우영우에게 패널티를 줘야 한다고 이야기할 때 정명석이 우영우를 지켜주는 모습이 가장 핵심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권 : 이번에도 주의만 주시는 겁니까? 패널티 없이요? 사소한 실수도 아니고.. 재판 결과를 뒤집어엎을 만큼 큰 실수였는데..
정 : 우리 전에도 이런 얘기 하지 않았나?
정 : 그때는 우변이 무단결근을 해서 패널티를 줘야 된다고 했었죠?
정 : 아, 권민우 변호사 패널티 되게 좋아하네? 그래서 게시판에도 그런 글을 쓴 겁니까?
정 : 아니, 같이 일하다가 의견이 안 맞고 문제가 생기면 서로 얘기해서 문제를 풀고 해결을 해야죠. 매사에 잘잘못 가려서 상 주고 벌주고.
정 : 난 그렇게 일 안 합니다.
기존의 담론과 통념으로 우영우를 판단하려고 했다면, 우영우는 아마도 한바다에서 해고됐을 것이다. 그러나 정명석 변호사는 기존의 담론과 통념에 해당하는 공정한 경쟁, 보상과 처벌의 논리로부터 벗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의 논리를 채택함으로써 우영우를 보호한다. 이러한 정명석 변호사의 도움은 우영우가 변호사로서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고, 변호사로서 생존할 수 있는 안전지대를 확보하게 하는 것이다.
다음 편에는 권모술수 권민우가 어떻게 기존 시대의 담론으로서 우영우를 비정상으로 규정하고자 하는지, 이것이 어떻게 보편적 학습설계를 방해하는 장애요소로서 작용하는지를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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