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다니고 아이 돌보고, 직장 다니고 살림하고, 직장 다니고 시어머니 모시고. 그렇게 바쁘게 살던 어느 날, 중학교 동창인 친구가 저를 보겠다고 기차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점심시간에 잠시 짬을 내어 만났습니다. 그날 저녁, 식구들이 함께 모여 저녁을 먹을 때 친구가 다녀간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딸내미 눈이 휘둥그레지며 묻습니다.
"엄마! 엄마한테도 친구가 있었어?"
엄마한테는 친구도 없고, 젊음도 없고, 어린 시절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날은 웃어넘겼지만, 아이의 말은 제 삶에 함께 했던 친구들을 잠깐 떠올리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을 찾거나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똑부러진' 인간이 되어야 했기에, 친구를 만날 시간 따위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공들여 다녔던 직장에서 퇴직을 하였습니다. 말이 좋아 퇴직이지, 후배에게 밀려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게다가 십여 년 동안 직장에서 가족처럼, 친구처럼 지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호되게 맞았습니다. 그렇게 끈 떨어진 신세가 되고 난 뒤에, 그제야 알았습니다. 저는 똑부러진 사람이 아니라 덜떨어진 사람이라는 것을요.
제가 덜떨어진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더군요. 아무도 제게 그런 말을 해주진 않았었거든요. 내로라하는 미모와 동안이라고, 뭐든지 잘 해내는 만능재주꾼이라고 칭찬받던 제가, 학창 시절에는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높았던 제가, 예간다제간다 했던 제가 덜떨어졌다니요. 덜떨어졌다는 말은,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코를 흘렸던 승수, 촌티가 줄줄 흐르던 인옥이, 코딱지만한 방에 대식구가 옹색하게 모여 살던 영주, 그 친구들에게나 해당되던 단어가 아니었던가요.
...
그런데요.
갈바람에 나뭇잎 떨구듯 나를 감싸고 있던 외피가 하나씩 둘씩 벗겨지니까 마음이 달라집디다.
내가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다닌 학교가 어디였는지, 내가 가졌다고 생각한 재산이 얼마큼인지, 내가 잘하는 재능이 무엇인지를 다 내려놓고 나니까요, 나는 덜떨어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 떨어져 가던' 존재였더라고요. 덜떨어졌던 건 친구들이 아니라, 그 친구들을 친구삼지 못한 나였습디다.
그래서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나의 덜떨어진 친구들에게요. 저물어 가는 해가 서산으로 꼴딱 넘어가 어둠이 덮이기 전에, 글을 쓸 수 있는 재주조차 똑 떨어지기 전에, 내가 속으로 무시하고 업신여겼던 친구들을 소환해 보기로 했습니다. 내가 뭘 피해 왔는지, 뭘 두려워했는지, 뭘 감추려 했는지, 뭘 불안해했는지 그네들이 알려주겠지요.
이 글은 프롤로그이지만 에필로그이기도 합니다.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런 걸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