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노래에 재능이 있던 너희들이 가수로 데뷔해 보겠다고 교실에서 연습하던 모습이 떠올랐어. 사오십 년 전에 아이돌을 꿈꿨던 걸 보면, 너희들에게는 세상을 앞서 보는 눈이 있었나 보네. 비록 그후 텔레비전에서 너희를 보지는 못했지만, 책상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친구들 앞에서 춤을 추던 장면은 연습생 시절의 소박한 무대처럼 내 기억 속에 선명하단다.
오늘 편지를 쓰면서, 내가 만났던 쌍둥이들을 손가락을 접으며 헤아려 봤어. 친구라고 할 수는 없는 인연들까지 따지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여러 쌍의 쌍둥이들을 만나며 살아왔더라.
젊어 한때 일했던 직장의 상사가 쌍둥이였어. 그분이 쌍둥이라는 것은 그쪽 업계(?)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이었지. 둘이하는 일도 비슷했고, 근무지도 가까웠거든. 한 사람은 우리 사무실에서, 또 다른 한 사람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건물에서 일하셨어.
일란성쌍둥이였던 그들은 머리가 벗어진 외모부터 목소리, 몸짓까지 서로 너무 닮아 있어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구별하기 어려워했어. 호쾌한 성격이면서 장난기가 있었던 그들은 가끔 사무실을 바꿔서 들어가기도 했는데, 아마 일을 바꿔서 했다고 해도 몰랐을걸?
눈썰미가 그리 좋지 않았던 나는 둘을 잘 구별하지 못했어. 그렇다고 번번이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어서, 나는 그가 누구든 멀리서 보이면 무조건 먼저 인사를 하기로 했지. 내가 알아보려고 하지 말고 상대방이 나를 알아봐 주도록 말이야. 내 인사를 받아주면 그는 내 상사요, 속된 말로 나를 '쌩까고' 지나가거나 어색해하는 눈치면 그는 짝퉁인 걸로 정리해 버린 거지.
쌍둥이와 관련된 또 다른 일화.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던 오빠 친구가 있었어. 오빠 친구와 그의 두 살 아래 쌍둥이 동생들은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대. 우리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성적이 발표되면 전교 석차를 1등부터 꼴등까지 복도에 붙여 놓았잖아. 그 오빠네 학교도 그랬는데, 오빠의 이름은 늘 맨 위 1등에서 5등 사이에 있었던 반면, 쌍둥이 동생들은 둘 다 맨 아래에서 찾는 게 빨랐다나 봐. 그 오빠는 자기 동생들의 성적에 대해 무람없이 떠들었어. 그러곤 웃으면서 이런 말도 덧붙였지.
"걔네는 태어나면서 아이큐도 반씩 나눠 가졌나 봐. 둘을 합한 게 나랑 비슷해."
쌍둥이가 아닌 사람들은 쌍둥이에게 뭔가 남다른 특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AB형 혈액형으로 태어난 사람은 바보 아니면 천재'라는 말도 안 되는 썰이 돌았던 것처럼, 쌍둥이들도 재능이 뛰어나거나 아니면 반쪽짜리로 모자라게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말이야. A, B, O형 혈액형에 비해 AB형인 사람들 수가 적고, 쌍둥이가 아닌 사람들에 비해 쌍둥이가 적으니까 지어낸 헛소리들이지.
사람들이 이래. 자기가 속하지 않은 소수의 집단에 대해 이렇게까지 폭력적이야. 다수에 속한다는 것이 무슨 우월한 유전자라도 타고난 것처럼 소수를 깔아뭉개고 놀림거리로 삼아. 우스갯소리로 포장해서 슬그머니 '디스'하는데, 사실 나도 종종 그랬어. 남을 깎아내림으로써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는 속셈이 있는 거지.
몇 년 전에 내가 맡은 아이들 중에도 쌍둥이가 있었어. 미리 말하지 않았으면 그들이 쌍둥이인 줄도 몰랐을 정도로 둘의 차이가 컸어. 여자 아이는 자기 앞가림도 잘하고 매우 영리한 아이였는데, 남자아이는 매사에 산만했지. 검사를 해보니 남자아이는 치료가 필요한 아이였더라.
난 그 아이들을 단독 인격체로 봐주지 못할 때가 많았어. '얘는 멀쩡한데 쟤는 왜 저래?' '얘'를 볼 때는 '쟤'를, '쟤'를 볼 때는 '얘'를 늘 비교치로 세워두고 아이들을 바라본 거야.
같은 아버지, 같은 어머니,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태어났다는 것이 유전적 원인을 찾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 자라온 환경적 요인도 비슷했을 테니 닮은 부분이 많기도 할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빠 친구처럼 하나가 쪼개져서 둘이 되었다거나, 하나는 진품이고 하나는 복제품으로 여기거나, 하나를 알면 둘도 안다는 식의 잘못을 쌍둥이들한테는 부지불식간에 저지르는 것 같아.
사람은 '완전한 하나'로서 각자 존중받아야 하는 건데도 반쪽 취급을 하고 말이지.
금숙아.
그러고 보니 나는 편지의 서두에서 나와 한 반이 되어본 적이 없고, 친하지도 않았던 금란이 이름도 함께 불렀더라? 금숙이는 금숙이, 금란이는 금란인데, 내가 아직까지 너희 둘을 한 묶음으로 생각하고 있었나 봐. 잘못된 생각이 굳어져 있으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걸 실감하게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