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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남매와 흔한 집사

사람과 고양이, 흔한 남매들의 흔한 스토리

by 글방구리

글방에 오는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요즘 초딩 문화의 트렌드를 알 수 있다. 아이들 사이에 인기 있는 영상, 아이들이 자주 하는 놀이,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는 책 등. 성탄을 앞둔 요즘에는 아이들이 동경하는 놀잇감의 종류도 눈치를 챈다. 산타 할아버지한테 받고 싶은 선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나오니까. 아무래도 내 관심은 아이들이 어떤 책을 즐겨 읽는지에 쏠린다. 놀이나 영상의 선호도는 성별에 따라 나뉘기도 하지만, 남녀 불문하고 인기가 있는 책은 단연코 [흔한 남매]다.


[흔한 남매]는 스무 살을 훌쩍 넘긴 아들내미가 어렸을 때 마르고 닳도록 읽었던 [Why?], [먼 나라 이웃나라] 시리즈와 비슷한 종류의 학습만화책이다. 개그맨들이 유튜브에 올려 히트를 친 콘텐츠가 바탕이 된 책인데, 남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안에 각종 분야의 지식과 정보가 담겨 있다. 긴 글보다는 그림과 짧은 글을 선호하는 세대의 아이들에게는 만화를, 만화책만 들고 사는 아이들을 보며 불안해하는 어른들을 위해서는 지식과 정보를 담겠다는,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이 먹힌 사례다. 게다가 에피소드는 남매간에 흔히 일어나는 아웅다웅, 옥신각신 스토리가 코믹하게 쓰여 있으니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만하다. 그 안에 욱여넣은 학습 지식을 아이들이 얼마나 기억하는지는 논외로 하자.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가르치신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그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만 머리에 남은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만화를 즐겨보지 않는 나도 아이들이 가져오는 [흔한 남매]를 들춰보며 키득거리는 이유는 우리 집에도 흔한 남매가 살기 때문이다. 사람 남매도 살고, 고양이 남매도 산다. 사람 남매의 흔한 스토리도 차고 넘치지만, 오늘은 고양이 에세이를 쓰고 있으니 고양이 남매 이야기부터 한다.


사실 우리 고양이들은 남매가 아니라 삼 남매다. 큰 누나 가을이와 남동생 둘, 메이와 막내. 글방에 오는 단우네와는 성별이 다르지만 조합은 같다. 단우네는 단우가 큰 오빠고 아래로 여동생이 둘 있다. 단우는 바로 아랫동생과는 앙숙이지만 막냇동생에게는 각별한 사랑을 보인다. 엊그제는 얼굴에 밴드를 붙이고 왔는데, 막냇동생이 할퀴었단다. 얼굴에 난 상처가 막냇동생에 대한 단우의 사랑에 흠집을 내지는 않나 보다. 단우네처럼 우리 고양이들도 첫째와 셋째 사이는 제법 훈훈하다.


막내가 가을이 꼬리를 물며 장난을 쳐도, 엉덩이 냄새를 맡으며 귀찮게 해도, 가을이 밥그릇에 남은 사료를 탐내도 가을이는 막내를 혼내지 않는다. 그냥 그러려니 내버려 둔다. 그런데 같은 행동을 메이가 하면 가을이는 뒤집어진다. 냥펀치를 날리는 것은 물론, 하악질을 넘어 꼬리를 부풀리고 호랑이처럼 으르렁대기도 한다. 물론 메이가 이미 국민밉상이 되어 버린 까닭도 있다. 배가 조금만 고파도 행패를 부리기 일쑤요, 같이 놀자는 표현을 목을 물어뜯으며 하는 녀석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우리는 메이가 엄마와 너무 일찍 떨어지는 바람에 '못 배워 먹은 자'이자, '도른 자'가 되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밉상짓을 해도 살짝 딱하게 본다. 처음에는 가르쳐 보려고 했다. 따뜻하게 공감하고 단호하게 훈육한다는 고차원적인 양육 방법도, 그저 소리를 지르거나 밥을 덜 줘 보는 상벌 수준의 양육 방법도 메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아무리 훌륭한 집사도 고양이의 사회성을 길러주지 못한다. 사람도, 고양이도 엄마 무르팍 위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 배워야 하는 것들이 있다. 아니, 그것은 가르치고 배운다는 개념이기보다는 같은 종으로 살아남기 위해 물들어야 하는 태도에 가깝다.


가을이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외동이었던 아이가 동생을 봤을 때 느낌은 남편이 첩을 데리고 들어왔을 때 느끼는 본부인 감정이랬다. 다 집어던지고 싶겠지. 엎어버리고 싶었겠다. 보장된 잠자리, 보장된 밥그릇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동생과 나누라는 것을 어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오. 독차지해 온 부모의 사랑과 관심은 온통 동생에게 가버렸고, 동생에게 자칫 잘못했다가는 곤장이라도 맞을 상황이거늘. 작고 어리다고 동생만 싸고도는 부모를 바라보는 형은 폐위된 왕의 처지처럼 느낄 수밖에 없을 테다. 고양이들도 그 정도일지 알 수 없으나,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영역동물의 본능이 없을 수 없다.


그러니 흔한 남매를 바라보는 흔한 집사는 너도 짠하고, 너도 짠하다는 마음이 들어 비슷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추르를 공평하게 짜준다. 워낙 뱃구레가 큰 막내에게 형, 누나 몰래 참치 한 숟갈 더 퍼주는 것은 안 비밀.


목화솜 방석을 놓고, 추르 한 봉지를 두고 날마다 티격태격 다투는 고양이 남매처럼, 클 만큼 큰 사람 남매도 여전히 흔한 스토리를 시전하는 중이다.

"어? 냉장고에 넣어둔 내 와플 어디 갔어?"(아까 오빠가 주머니에 숨겨서 방으로 가져간 게 그거였구나.)

"야, 너 얼굴에 여드름 났어. 더 못 생겨졌는데?"(너도 옛날에 여드름 많이 났거든?)

"엄마, 오빠가 엄마 아들이기도 하니까, 내가 이르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빠가..."(어릴 적부터 그렇게 오빠를 일러대더니만 아직도...)

"너 어디 갔다 오냐?"(일주일에 여섯 번 가는 학원인데, 그걸 물어보냐.)

"오빠 언제부터 집에 있었어?"(방에 있는 오빠를 못 볼 만큼 우리집이 크지도 않구먼.)

"**이 좋겠다. 엄마가 옷도 사주고."(넌 군인이었잖아. 군복 사주랴?)


으이그, 남매는 단 둘이건만. 서로 관심 좀 가지면 안 되는 거니. 오빠 편을 들 수도, 동생 편을 들 수도 없는 부모의 고뇌 따위를 알아달라고는 하지 않는다. 늬들도 결혼을 해서 꼭 너희 같은 남매를 낳아보라는, 축원인지 보복인지 모를 '흔한 부모'의 바람만 중얼거려 보는 거지.

귀신놀이를 하던 흔한 남매의 다정했던 한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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