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두 번의 추석과 한 번의 설이 지나갔는데도, 다음 달에 있을 설에 아버지에게 가지 않고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내가 아직 낯설다. 아버지가 사시던 집에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왠지 아직도 거기에 그 모습으로 계실 것 같다, 단지 내 눈에만 안 보일 뿐. 내가 아버지를 그리워하거나 보고 싶어 하는 걸까? 글쎄.
아버지보다 이십 년쯤 전에 돌아가신 엄마는 가끔 그립고, 가끔 보고 싶었다. 엄마 생각을 하면 아직도 가슴이 찌릿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내가 아버지보다 엄마와 더 각별했던가? 그래서 엄마는 보고 싶기도 하고 그립기도 한데, 아버지는 그러지 않은 걸까?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는 40대 초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는 환갑이 다 된 내 나이 때문이었을까?아니면, 갑자기 가신 엄마와는 달리 긴 투병을 한 아버지와는 헤어질 준비를 더 오래, 더 찬찬히 했기 때문일까?
그 이유도 문득 깨달았다. 내가 엄마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는 건, '헤어진 이후, 엄마의 변화'가 그려지지 않아서였다. 나와 엄마, 나와 아버지 사이에 쌓인 정의 질량이나 관계의 퀄리티가 달라서라기보다는, 아버지처럼 호호할머니가 된 엄마를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상상해 낼 수 없음이 나를 더 슬프게 하는 거였다.
산책길이었다. 구름이 하루종일 낮게 깔려 있었다. 이런 날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뒷산을 한 바퀴 도는 가벼운 산책도 햇빛이 솔잎 사이사이로 비춰 내려오는 맑은 날, 맑은 아침에 주로 한다. 그런데 엊그제는 꾸물꾸물한 해거름에 산길을걸었다. 기분도 좀 가라앉았다. 여느 때처럼 한 바퀴 돌고 내려오니 어느새 어둑해지고 있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둠이 덮이는 길목 저 끝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앉아 있는 고양이를 보고 나는 큰소리를 낼 뻔했다.
"아라리요? 너 아라리요니?"
여름에 우리 집 베란다에서 태어나 얼마 전까지 살다가 홀연히 떠난 아기 삼색냥 아라리요. 떠난 이후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아라리요가 거기에 앉아 있.......는 줄 알았다. 반가운 마음에 한두 발짝 다가갔을 뿐인데, 고양이는 화들짝 놀라며 어느 집 대문 안으로 숨어 버렸다. 달아나는 뒷모습을 보니, 아라리요가 아니다. 아라리요는 갈색과 흰색, 검은색 무늬가 섞인 삼색이 고양이고, 엄마를 닮아 등 한가운데에 흰 줄이 있다. 그러나 그 고양이의 뒷모습은 갈색과 회색, 검은색이 섞인, 일명 '고등어'라고 하는 고양이었다. 그런데 아주 짧은 순간, '크면서 털 색깔이 바뀌었을지도 모르잖아.'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스쳐갔다. 아라리요를 만나고 싶은 내 무의식이 털 색깔을 바꾸면서까지 그 녀석을 아라리요라고 믿으려 했나 보다.
대문 안에서 몸을 숨기고 나를 내다보는 고양이와 눈을 맞추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이라 안심했는지, 고양이는 '자, 나를 다시 잘 보세요. 나는 당신이 찾는 아라리요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도 '네가 아라리요가 아닌 줄 알아. 하지만 아라리요가 컸으면 아마 지금 너만 해졌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고양이와 말 없는 말을 주고받았다.
아라리요가 다 자란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라져 버려서, 성묘가 된 모습을 상상할 수 없어서 더 마음이 가고 궁금한 거라고 생각했다. 마치 엄마의 노년을 상상할 수 없는 게, 엄마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하는 것처럼.
거기에서 생각을 멈췄어야 했다, 마음이 아프지 않으려면. 그런데 사라진아라리요는 '실종'이라는 단어를 물고 왔고, 그 말은 '송혜희'라는 이름으로이어졌다. 여느 무미건조한 광고처럼 '***을 찾습니다'가 아니라,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라는 호소가 절박해서 뇌리에 남았던 현수막. 1999년, 여고생일 때 실종되었다고 하는데 2023년인 요즘에도 여러 지방에서 종종 볼 수 있던 현수막이었다. 나는 식구들과 맛집을 찾아, 풍광을 즐기러 가는 여행지지만 실종 아이의 가족은 실낱 같은 희망을 붙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고 있는 것이다.
어디 송혜희 하나뿐인가. 수많은 실종 어린이가 있다. 사고를 당해 아이를 갑자기 잃는 것도 참척의 고통이지만, 아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랐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족의 고통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으러 헤맸을 부모의 발걸음에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눈물이 함께 뿌려졌으리라.
요즘은 휴대폰 앱으로도 나이가 들은 뒤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기술은 상용화되지 않았더랬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은 아이가 자랐을 때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을 테다. 휴대폰 앱으로, AI로 비슷하게 유추해 본다고 해도, 아이가 진짜 그렇게 자랐을지 아닐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더욱 막막하고 막연하게 잃어버린 아이의 모습을 머리에 그려보고 보고파할 것이다.
베란다에서 잠깐 살다 간 고양이가 '실종'이라는 연관 단어를물고 오는 바람에 실종 어린이의 부모를 생각하게 된 나는, 그전까지고양이에게 '보고 싶다'는 표현을 쓴 게 너무 죄스러웠다. 내가 아무리 예뻐한다고 해도, 그깟 고양이다. 아버지 표현대로라면 괭이새끼, 도둑괭이 새끼일 수도 있다. 사람이 아니므로 귀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아무리 미물이라도 생명이 있는 한 귀하다. 그러나 사람에게 써야 할 말을 함부로 질러서는 안 되는 게 있다. 고작 서너 달 동안 자라는 모습 훔쳐봤다고, 정이 들면 얼마나 들었다고 '보고 싶다'는 표현을 쓰다니.
보고 싶다는 말, 그립다는 말은...
그 말은, 수십 년 함께 살다가 잃어버린 자녀를 찾으려고 수십 년 동안 거리를 헤매고 다닌 부모도 가슴에 사무쳐서 쉽게 꺼내 놓지 못하는 말이다. 그렇게 무겁고 무거운 말, 귀하고 귀한 말이다.
고통 앞에서 말은 대체로 무력하다.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도 하지 못하는 것이고통이다. 그 마음 이해한다느니, 짐작할 수 있다느니, 하는 말, 더욱이 참으라니, 곧 지나간다느니 하는 말은오히려 고통을 배가하고,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말로 공감된다면, 말로 위로된다면 진짜 고통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고통을 겪는 사람 앞에서는 무조건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게 사람에 대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당신, 아라리요 만진 적 있지?"
내가 아라리요가 궁금하다고, 자꾸만 눈에 밟힌다고 말하니, 남편이 내게 물었더랬다.
"밥 먹을 때 만진 적 있지. 그래도 걔 엄마가 싫어할까 봐 안아주진 않았어."
남편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본다. 실은 자기도 그랬다고. 그 고운 털을 만지고 나니, 더 정이 깊어져 그런 거라고.
'그러게. 괜한 짓으로 괜한 정을 들였나 보다. 작은 몸으로 오도독 밥을 먹는 뒤태가 귀여워 살그머니 만졌던 게 실수였네.'
후회를 하다 보면 마음이 바뀐다.
'아니다. 어차피 떠날 건데, 확 안아 버릴걸.'
...
...
아아, 고양이로 시작된 생각은 또 하염없이 사람으로 넘어온다. 몇 달 만나고, 두어 번 쓰다듬은 뒤끝이 이렇거늘, 우리 집 고양이들과는 어떻게 헤어지나. 아니, 내 아들 내 딸과는 어찌 헤어질 건가.
내가 이름 지어 주고, 밤새 쓰다듬었던 아이들과 헤어지는 날이 오면 얼마나 아플 것인가. 내 숨이 넘어가는 것보다도 쓰린 이별이겠지. 너희가 그리울 거야, 보고 싶을 거야, 더 안아주지 못해 미안해, 후회하면서 갈 길을 가게 되겠지...
아, 그렇구나. 내 아버지, 어머니도 그와 같은 고통을 겪고 가신 거구나. 내가 보고 싶을 거라고, 날 더 안아줄 걸 후회하면서 가셨겠구나,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고양이를 보면서 나는 대체로 웃는다.
그러나오늘은 고양이를 보면서, 운다. 고양이를 핑계 삼아, 운다.
깻잎인 이렇게 컸다. 아라리요도 깻잎이처럼 성장과정을 쭉 지켜볼 수만 있었어도 안심이 되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