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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부르냐? 나도 부르다

고양이 가을이와 나의 일곱 가지 공통점

by 글방구리

그래도 몇 백 그램은 빠져 있기를. 샤워를 한 뒤, 체중계에 발을 올리기 전 마음에 품는 소망이다. 겨울 옷들은 무게가 많이 나가니까 잠옷 무게를 뺀다고 해도, 한 번 최고점을 찍은 숫자는 아래로 내려갈 줄을 모르는구나. 목걸이도 안 했고, 시계도 안 찼고. 몸에서 더는 내려놓을 것이 없으니, 체중계에 찍힌 숫자는 내 몸무게가 맞으리.


체중계 앞에는 전신 거울이 있다. 사진 찍기를 싫어하듯 거울 보는 것도 싫어진 나이다. 사진에 찍힌 내 얼굴은 내가 기대하는 그 얼굴이 아니고, 거울에 비치는 내 몸매도 내가 원하는 몸매가 아니다. 나잇살은 배로만 먹는 건가, 이 항아리를 어찌할꼬.


저녁밥을 건너뛰고 방에 들어왔더니 가을이 이불 위에서 세상 편한 자세로 자고 있다. 민망할 정도로 드러난 흰 뱃살. '아니, 저거슨!' 조금 전 거울에 비친 내 뱃살과 어찌 이리 유사하다는 말이냐. 내친김에 가을이와 나의 공통점을 찾아본다.


하나, 그녀도 부르고, 나도 부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가을이도 걸을 때 출렁거리는 뱃살이 있고, 나도 유난히 한 군데로 몰린 뱃살이 있다. 뱃살이 많은 만큼 배짱도 든든하면 좋을 텐데, 나는 뱃살만 든든하지 작은 일에도 겁을 먹는 겁쟁이다. 불안지수도 높다. 한반도에 전쟁이 나지 않을까, 백두산이 폭발하지 않을까, 식구들이 큰 병에 걸리지 않을까, 교통사고가 나지 않을까, 나아가 이 지구가 끝내 망하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걱정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는 것일수록 더 불안해한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기도를 한다. "살아야 하면 살 용기를 주시고, 죽어야 하면 죽을 용기를 주세요."라고.


둘, 그녀도 미인이고, 나도 미인이...었다, 젊어 한때.

우리 엄마는 자기가 나를 낳았으면서도 내 외모가 마음에 별로 들지 않았나 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유독 내 코를 납작코라고 놀렸다. 나는 손님만 오시면 손으로 코를 가리고 엄마 뒤로 숨었다. 엄마는 커서까지 그 일로 나를 놀렸는데, 그게 얼마나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렸던 건지 엄마는 몰랐겠지. 아무튼 그런 외모였어도 이 나이 될 때까지 얼굴에 칼을 대지도, 바람을 불어넣지도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계획은 없다. 내 외모에 자신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몸에 칼을 대는 게 얼마나 아픈지, 아들을 낳으면서 알았기 때문이다(산고는 산고대로 다 겪게 하고, 뱃속에서 태변을 봐 응급수술을 하게 한, 불효자노무스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우리 가족 눈에는 가을이도 미묘, 나도 미인이다(우리 가족이 이 문장을 못마땅해할까 봐 '그래, 옛날에 미인이...었다!'로 한발 물러선다).


셋, 그녀도 나도 우리 집에서 나이가 가장 많다.

요즘에야 '누나'랑 결혼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지만, 내가 결혼할 무렵만 해도 연하는 센세이셔널한 일이었다. 엄마는 내가 남편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네가 최진실이냐?" 하고 일갈했다. 최진실은 아니었어도 연하였던 남편과 결혼을 하는 바람에 나는 우리 집에서 중전마마를 넘어 대왕대비마마처럼 대접받으면서 산다. 하지만 대왕대비마마와 더불어 무수리라는 부캐도 갖고 있는 나와는 달리, 우리 가을이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사는 찐 대왕대비냥이다. 말 나온 김에 최진실, 조성민 부부의 명복을 빈다.


넷, 가을이는 잘 때 코를 곤다. 나도 곤다.

어릴 때는 내가 그렇게 빠드득빠드득 이를 갈았다더라. 단칸방에 살 때 오빠한테 구박을 참 많이 받았다. 나는 가끔 이가 왕창 빠지는 꿈을 꾸기도 했는데, 오빠는 그 꿈이 부모님 돌아가시는 꿈이라고 했다. 그런 날이면 내가 꿈을 잘못 꿔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루종일 마음을 졸였다. 생각해 보니 내가 이를 심하게 갈아서 그런 꿈을 꿨던 게 아닌가 싶다. 아버지는 89살까지 장수하셨고, 엄마는 그보다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적어도 내 꿈 때문은 아니다. 오빠는 내 손금을 보고 생명선이 짧다고도 했다. 그런데 나는 환갑이 되도록 잘 살고 있다. 오빠는 엉터리 꿈해몽과 손금으로 내 불안감을 증폭시킨 사이비 점쟁이가 틀림없다.

그랬던 내가 나이가 들면서 코를 곤다. 아이들이나 남편이 흉을 볼 때면 기분이 나빴다. 아니라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요즘엔 똑똑한 시계가 코골이 데이터를 저장해 주는 바람에 아니라고 발뺌을 할 수도 없다.

가을이도 깊은 잠에 빠지면 코를 골 때가 있다. 어릴 때 이를 갈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자는 가을이를 건드리면 신경질 내면서 문다. 이 가는 것보다 더 나쁘다. 그러니 어지간하면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


다섯, 가끔 터무니없이 소리를 지른다.

가을이가 지르는 소리는 고성과 괴성을 합한, 매우 거슬리는 소리다. 평소에는 과묵하기 이를 데 없고, 자애롭기까지 한 가을이지만, 집사에게 요구사항이 있을 때는 굉장히 큰 소리로 운다. 다른 고양이들도 배가 고프면 집사 방문 앞에서 우는데, 자고 있는 집사를 결국 일으켜 세우는 건 가을이다. 가을이가 소리를 지르면 얼마나 거슬리는지 견뎌낼 자가 없다.

나는 한때 공황장애와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과호흡이 오거나 불안지수가 극에 달하면 발작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더랬다. 병이라고 인정하면서 반쯤 고쳐졌고,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 몇 년 동안 상담과 약물치료를 하면서 거의 다 나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섯, 가을이도 나도 꽃을 좋아한다, 좋아만 한다.

가끔 꽃다발을 받을 때가 있다. 살 때도 있다. 꽃은 사도, 받아도 다 기분 좋다. 사지도 받지도 않고 남의 집 마당에 핀 것을 보기만 해도 좋다. 식구들 중에서 꽃 선물을 가장 많이 받았다. 일곱 살 방을 오랫동안 맡았기에 부모님들이 졸업식 때마다 내게도 꽃다발을 주셨다. 내가 아끼는 후배는 스승의 날이 되거나 나를 만나러 올 때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를 가져온다.

집에 꽃이 들어오면 가을이가 가장 흥미를 보인다. 마치 자기 것인 양 냄새를 맡기도 하고, 꽃 속에 얼굴을 묻는다. 고양이한테 꽃이 독이 될 수도 있다고 하지만, 가을이는 좀 예외인 듯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 집에 들어온 꽃은 고양이들이 손댈 수 없는 높은 곳에 걸어 말린다. 그러고는 가을이도, 나도 잊어버린다. 손바닥만 한 마당에 철마다 꽃을 사다 심는 사람, 꽃이 시들지 않게 물을 주는 사람은 가을이도 나도 아니고 집사 남편이다. 남편이 가꾸는 소박한 정원을 나는 즐기기만 한다. 그냥 좋아만 한다.


일곱, 호불호가 분명하다.

가을이는 메이를 존재 자체로 싫어한다. 반면 막내한테는 한없이 너그럽다. 막내가 와서 엉덩이를 킁킁거려도, 꼬리로 장난을 쳐도 만사 오케이. 그러나 메이는 옆에 지나가기만 해도 하앍. 자기가 남긴 밥을 막내가 와서 먹으면 그냥 보고 있으면서, 메이가 탐을 내면 냥펀치가 날아온다.

나도 그렇다. 믿고 마음을 준 사람한테는 가능한 잘해주는 편이지만, 한번 마음을 접은 사람한테는 정을 주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거리를 두기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웃는 낯으로 대하지 못한다. 아마도 그게 내가 출세하지 못한 가장 큰 걸림돌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집은 집 구조가 특이하여 계단이 많다. 전에는 스무 계단 정도는 단번에 걸어 올라왔는데, 차츰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잦아졌다. 나이가 들어 무릎 관절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몸무게가 무거워진 데도 원인이 있으리라. 다이어트로 살을 좀 빼야 하긴 하는데, 하기가 싫다.

가을이를 보니 묘수가 떠오른다.

가을이가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날, 나도 같이 시작하는 걸로! 가을아, 다이어트 같이 하자냥?

가을이와 나의 다른 점. 가을이의 발바닥에는 굳은살이 없다. 가을이는 자식이 없어 속 편하게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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