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글쓰기를 함께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하루 기차 여행을 다녀왔어. '역사문학기행'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지만, 일 년 글쓰기를 마무리하면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자는 마음이 더 컸지.
아이들이 잘 아는 동요 '반달'을 지으신 윤극영 선생님 가옥을 들르고, 근처에 있는 4.19 묘역에 참배하고 나서 창경궁으로 가던 길. 버스를 탔어. 점심에 짜장면을 배부르게 먹은 아이들이 잠 속으로 빠져드는 동안, 나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정옥이 너를 생각했어. 일 년 남짓, 저녁마다 너와 네 동료들, 나와 내 선배들이 만났던 야학이 있던 동네를 지나치고 있었거든.
내가 야학교사를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니? 대학 입시고사를 썩 잘 보지 못한 나는 지원서를 내고는 성당에 가서 기도를 했어. 아니, 기도가 아니라 거래, 또는 흥정이었지. 원하는 대학에 붙게 해 주시면 성당에 있던 야학에서 봉사하겠노라고. 그래서 합격이 된 뒤 야학 교사를 해보겠다고 문을 두드린 거야.
'**교육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곳에서 난 고입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게 돼. 갓 스무 살이 된 내가 열여섯 살인 너를 만나, 너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들었던 곳. 오 마이갓, 선생님이라니! 지금 생각하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구나.
너는 시골에서 혼자 상경했다고 했어. 동대문 근처에 있던 작지 않은 원단 공장에서 시다로 일하고 있었어. 공장에서 숙식을 하는데, 야근이 없는 날에는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그 야학을 다닌다고 했어. 처음에는 나를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어. 그러다 네가 며칠 동안 말없이 결석을 했고, 나는 주소를 들고 네가 다니던 직장으로 너를 찾아갔지. 기숙사라고는 하지만 아주 좁은 방에 이층으로 되어 있던 침대 하나, 그게 네게 주어진 사적 공간의 전부였어.
네가 살고 일하던 곳의 공기, 그곳의 냄새를 아직 기억해. 당시의 기억이 강렬히 남아서라기보다는, 이미 내가 맡아본 적이 있던 익숙한 냄새였기 때문이야. 동대문 종합상가. 개미굴처럼 점포가 빼곡히 들어선 상가 안에 들어서면, 그곳 특유의 냄새와 공기가 콧속으로 훅 들어와. 지겟짐을 지고 원단을 운반하는 아저씨들을 비켜주느라 점포 쪽으로 몸을 붙이노라면 원단에서 날리는 먼지와 실 보푸라기들이 폐 속까지 들어오는 느낌이었어. 마음에 드는 원단을 고르기도 전에 나는 폐쇄공포증인지, 불안감인지 모르는 두근거림과 식은땀에 젖어 상가를 바삐 빠져나오곤 했어. 나와서도 한참 동안 따가운 눈을 비벼야 했고.
아직 키도 덜 자란, 어쩌면 생리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열여섯의 어린 네가 먹고 자면서 열두 시간씩 일하던 직장이 바로 그런 곳이었어. 너, 그리고 너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오글도글 모여 살면서 했던 단순노동 덕분에 나라 살림이 좋아진 것인데도, 우리 사회는 너와 같은 아이들에게 다른 이름을 붙여 불렀지. 야학 안에서는 금기어였지만 한 발짝만 나가도 쉽게 들을 수 있던 호칭, '공순이'.
정옥이 너는 몰랐겠지만, 당시 야학교사는 두 그룹이 있었어.
한 그룹은 일명 운동권이라고 하는 선배들. 그들은 금지된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데모에 앞장서곤 했어. 또 다른 그룹은 교육의 기회를 놓친 너희들이 검정고시를 잘 볼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사람들이었지. 전자가 똑똑한 사람들이라면 후자는 따뜻한 사람들이었달까.
그런데 똑똑한 사람들과 따뜻한 사람들이 협력하기보다는 서로 자신의 방법이 옳고 필요하다고 주장했어. 교무실에서는 폭언과 욕설이 끊이지 않았고, 서로 풀자면서 만나는 대폿집에서는 더 날카로운 폭언과 더 강한 욕설이 날아다녔어. 세상을 바꾸겠다는 운동권 선배들의 뜨거운 열망도, 자기가 먼저 배우고 아는 것들을 나누겠다는 또 다른 선배들의 선한 바람도 자기 것이 더 옳다는 주장 앞에서는 폭력으로 변질되어 버리고 만 거지.
나는 어느 그룹이었느냐고? 나는 그 둘 중 어느 한 편에도 속하지 못했어.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처럼, 쓸개에 붙었다 간에 붙었다 하는 간신배처럼, 필요할 때마다 양쪽을 오갔다고나 할까. 운동권 선배들의 우월감과 오만방자함을, 검정고시 준비반 선배들의 뜨뜻미지근한 나태함을 비난한 나는 '비겁함'을 내 스탠스로 취했던 거야.
너는 졸업을 앞두고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해왔어. 내가 다니는 대학을 가보고 싶다는 거였지. 네가 쉬는 날, 둘이 같이 캠퍼스 구경도 하고, 학교 앞에서 떡볶이도 사 먹었어. 한껏 멋을 부리고 나온 너는 그날, '여대생' 흉내를 내보고 싶어 한 것 같기도 했어.
정옥아, 나는 그날 네게 말이나 행동으로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누릴 수 있고 너는 누릴 수 없는 것, 그저 동경하기만 해야 하는 것들을 네게 보여주었어. 내 안에 꼴난 우월감이 없었다면 그따위 행동은 하지 않았을 거야. 네 부탁이라고는 하지만 거절할 핑곗거리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을 테니까. 조금만 더 길게 내다보는 안목이 있었더라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테니까.
나이가 들어 좋은 건, 눈앞의 현상을 너머 조금 더 길게 내다볼 줄 알게 되었다는 거야. 그리고 아무리 길어 봤자 그 세월 역시 눈 깜빡하는 사이에 지나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이지.
세월이 나한테만 왔던 게 아니니, 너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살고 있겠구나. 지금의 너는 지난 시절 네 호칭이었던 '공순이'라는 말로 모멸감을 느끼지 않기를, 지금의 너는 달콤한 휴일에 흥청거리는 여대 앞에서 여대생 흉내를 내지는 않기를, 비겁하기 짝이 없었던 나를 너와 다를 바 없는 철부지 젊은이로 기억해 주기를 바라.
그리고 너도 혹시 창경궁을 가다가, 버스를 탔다가 그 동네를 지나가게 되면, 한 번쯤은 늙수그레한 나를 떠올려 주기를 바라. 옛정을 생각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