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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Oct 20. 2024

타로 카드에 미래를 맡기지 말지니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주일) / 마태오복음 28,16-20

퇴직 후 한때 마을공동체 사업을 계획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린이집과 방과 후, 노인정까지 어느 정도 네트워크 기반이 있는 곳에서 마을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을 꿈꾸었지요. 딱 좋은 공간을 임대받을 예정이어서 매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더랬어요.


'퇴직하려 했던 주방 선생님에게 한쪽을 내드려 작은 카페를 만들고, 빈 시간에는 맞벌이 엄마들을 위해 나물반찬을 만들어 팔아야겠다, 친환경 세제를 자유롭게 덜어서 파는 '알맹상점'도 한편에 만들어야지, 아이들과 학년별로 만나는 글쓰기 교실도 계속하고, 학원 빈 시간에 오가는 아이들에게는 작은 간식이라도 먹여줘야지. 칸막이가 있는 별도의 공간에는 공유재봉틀을 두면 도움이 될 거야. 낮에는 아이들이 오가고, 밤에는 부모들에게 대여해서 만남의 장소로 사용토록 하면 기본적인 수익은 낼 수 있을 거야. 아, 어른들 독서모임이나 글쓰기 모임도 해보자.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일이면 자원활동가들이 함께 할 거고, 떼부자가 되겠다는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마을에 정말 좋은 공간이 될 거야.'


부모든 교사든 대화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와서 차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눠도 좋을 공간. 머릿속으로 참 많은 구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곳이 마련되면, 제가 해보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가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한 상담이었는데요, 어쩌면 그렇게 은근슬쩍 전교를 할 수도 있겠다는 속셈도 없잖았습니다. 제가 심리상담을 공부하거나 상담사 자격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간 경험으로 볼 때 누군가 상담을 원하면 성령께서는 늘 제게 성경 말씀을 떠오르게 해 주셨거든요.


하지만 다들 아시잖아요, 길거리에서 성경 말씀 적힌 전도지를 나눠주며 말 걸어오는 게 얼마나 불편하고 거부감이 느껴지는 일인지요. 아마도 대놓고 성경을 펴놓고 상담을 한다고 하면, 부담 없이 들어오려다가도 발걸음을 돌렸을 거예요. 속으로 '여기 혹시 신천지 아냐?' 하는 의심을 품을 수도 있고요.


그때 퍼뜩 떠오른 생각이 '타로 카드'였습니다. 사주팔자나 관상, 궁합과는 다르지만 미래를 점친다는 것 때문에 가톨릭 교회에서는 질색팔색 하는 것 중의 하나죠. 아마도 돈을 주고 타로를 보고 왔다고 한다면 충분히 고해성사 볼 거리가 되겠고요. 그러나 저는 타로 카드가 젊은 교사나 부모들에게, 그들이 어떤 종교를 갖고 있든지 가볍게 다가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신내림 받은 무당도 아니고, 타로로 밥 벌어먹고사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첫 만남을 어색하지 않게 하자는 거였으니까요. 처음에는 '나 이거 죄짓는 거 아냐?'라는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과 친교의 자리,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게 재미삼아 한다생각에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 달 동안 유튜브를 보며 열심히 타로를 공부했지요. 타로 카드를 미래를 내다보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모으고 사람들 사이에 어색함을 없애줄 도구로 사용하고 싶었던 겁니다. 궁극적으로는 타로 대신 성경을 알려주는 전교까지 하고 싶었고요. 꿈이 야무졌지요.


오늘은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는 전교주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으니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사명을 실천하라는 주일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선교 사명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먼저 알았던 선교사들이 '모든 민족들'에게 무조건 성경을 들이밂으로써 얼마나 큰 부작용을 가져왔는지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민족들이 살고 있던 기존의 문화를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선교를 하지 않고, 계몽하고 깨우쳐주어야 할 무지하고 미개한 문화라고 접근했던 역사가 얼마나 많았던가요.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가,로 감화를 받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목소리가 안 들릴까 싶어 확성기를 사용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눈길을 끌려는 '가두선교단'을 만나면, 그들이 무슨 좋은 말을 하나 들어보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들에게 잡힐까 봐 피해 가고 싶은 마음이 앞섭니다. 하지만 직접 말을 걸어오지 않아도 그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를 보면서 감화를 받을 때는 더러 있어요. 그런 사람에게는 한발 더 가까이 가고 싶고, 그 사람이 무슨 힘으로 그리 사는지 궁금해지지요.


말과 행동이, 행동에 어울리는 태도가 몸에 밴 사람을 만나면 그들에게는 저절로 스며듭니다. 이때 만남은 꼭 얼굴을 보고 직접 대화를 나누는 만남이 아니어도 그가 내뿜는 아우라에 압도되고 말지요. 그러면 그들이 믿는 신, 그들이 말하는 신앙이 궁금해져요. 오지 말라고 해도 가까이 가고 싶어집니다. 마더 테레사, 이태석 신부, 프란치스코 교종 같은 분들이 그렇습니다.


이제 와 되돌아보니, 제가 타로 카드가 아니라 타로 할아비를 갖다 놓았다고 하더라도, 마을공동체 공간을 통해 선교를 했을 확률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제 삶과 말, 행동과 태도가 진실한 신앙에 얼마나 가까운지, 제게서 과연 성령의 향기가 나는지 자신할 수 없으니까요.


아, 그래서 마을공동체 사업은 어찌 되었느냐고요? 예정했던 오픈 한 달 앞두고 파투 났습니다. 공간을 빌려주겠다고 했던 분들이 하루아침에 마음이 바꾸었거든요.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말로 공간 임대 주기를 꺼려했어요. 제가 그 일을 해내지 못할 것이다,라는 걱정을 앞세운(저를 위한?) 결정이라고 하나,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가 약정했던 임대료가 너무 적어서 그랬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솔직하게 말했으면 저도 방법을 찾아보았을 텐데, 시작하지도 않은 제 능력만을 문제 삼으니 저도 상처가 꽤 깊었습니다.


어쨌든 그 일은 제게도 몇 가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첫째는 아무리 훌륭하다고 이름난 사람이라고 해도 무조건적인 존경이나 신뢰를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내가 상처받는 일은 하지 말자.) 둘째는 아무리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해도 그 사람의 능력을 함부로 재단하는 말은 하지 말자는 것(내가 상처 주는 일도 하지 말자.).


그리고 중요한 셋째! 타로 카드가 일이 이렇게 될 줄 미리 가르쳐 주지 못했으니 타로 같은 데 자신의 운이나 미래를 걸지 말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다]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하겠다."
Der Missionsbefehl
Aber die elf Jünger gingen nach Galiläa auf den Berg, wohin Jesus sie bestellt hatte. Und als sie ihn sahen, fielen sie vor ihm nieder; einige aber zweifelten. Und Jesus trat heran und sprach zu ihnen: Mir ist alle Macht gegeben, im Himmel und auf Erden. Darum geht hin und macht alle Völker zu Jüngern: Tauft sie auf den Namen des Vaters und des Sohnes und des Heiligen Geistes, und lehrt sie alles zu halten, was ich auch befohlen habe. Und siehe, ich bin bei euch alle Tage bis an das Ende der We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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