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월 홀로서기의 시작 10개월 차
퇴사하고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나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 달려온 탓에 지쳤고 스스로 의도적으로 일과 인간관계, 취미와 연애를 정리했다.
그때는 내가 선택한 정리였다.
‘이건 지금 나에게 필요해’라는 걸 명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스스로 거리를 두고, 멈추고, 속도를 조절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엔 ‘의도적인 정리’가 아니라 그냥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기 싫었다. 아무것도.
무언가를 할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무언가를 할 마음 자체가 들지 않았다.
일도, 사람도, 여행도.
심지어 내가 좋아하던 고성 집에 오는 일조차 예전만 큼 설레지 않았다. 1월은 그런 시간이었다.
모든 것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었지만, 이번엔 내가 나를 조절한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의욕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무기력의 중심에는 겨울이라는 계절과 그 안에서 서서히 식어가던 연애도 한몫을 했던 것일까?
고성 집은 늘 나 혼자 머무는 공간이었다.
혼자인 게 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게 나만의 루틴이자 위로였다.
겨울에 찾아온 사랑, 12월, 크리스마스를 고성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와 이 공간을 함께 채웠다.
그 시간은 따뜻했다. 예상보다 훨씬 더. 그래서였을까?
그 온기가 사라지고 난 뒤,
다시 혼자 돌아온 고성 집은 유난히 외롭고 차가웠다.
나는 그제야 ‘외롭다’는 감정을 또렷하게 느꼈다.
그 감정이 낯설었다. 나에게 외로움은 익숙한 게 아니라, 처음 마주한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감기에 심하게 걸려 몸도 많이 아팠다. 서울에서 남자친구와 새해를 함께 보내려 했지만
몸이 아픈 탓에 수액을 몇 번이나 맞고 결국 혼자 고성으로 내려왔다. 몸도 마음도 아픈 상태로 2025년의 새해를 혼자 맞이했다.
그즈음부터 내가 나를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느껴졌다. 기존에 하던 일들은 대부분 줄이고
계약된 일 하나만 이어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급함도 없었다. 늘 계획적이고 빼곡하게 채우는 나의 캘린더 또한 채워지지 않았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전지를 꺼내 펼쳐보았지만 아무것도 써지지 않았다.
머리가 멈춰 있었고, 손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든 엉덩이 붙이고 뭘 했을 텐데
이번엔 그냥 정말 대책 없이 놔뒀다.
모르겠다. 그냥 놔둬 보자.
모르겠다. 그냥 놔둬 보자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해낼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지금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 시기’라는 걸
억지로 이겨내려고 하지 않기로 했다.
그 시기에는 사람도, 관계도, 나 자신도
어느 것 하나 애써 노력하지 하지 않았다.
회사 생활에 1년에 한 번씩 통상 장기휴가가 있듯 나도 한번 쉬어줘야 하는 시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친한 친구와 시간이 맞았고
그렇게 급하게 친구와 일본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여행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리프레시
여행을 할 땐 원래 기존의 감정과 일상에서
잠시 멀어질 수 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걸었고, 먹었고, 웃었다. 그 시간이 고맙게도
내 안에 단단히 붙어있던 무기력을 조금은 풀어주었다.
아주 작지만 확실하게 그건 회복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오고 난 뒤
2월
결국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누구를 만날 때 ‘결혼’을 목표로 하며 만나고 싶진 않았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때는 자연스럽게 결혼이나 아이를 상상하게 되겠지, 싶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와 함께하면서 처음으로 결혼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그와 닮은 아이를 상상했고
이 사람이면 가능하겠다는 확신 같은 것도 느꼈다.
만난 기간은 짧았지만 마음만은 아주 깊었다. 그래서인지 이별은 더 갑작스럽고, 더 깊게 아팠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 예상하지 못한 이별.
몸보다 마음이 훨씬 더 지치고 아팠던 시간.
시간이 해결해 주듯 그 시기 속에 회복도 함께 있었다.
무너짐과 회복이 동시에 있었고 슬픔 속에서 내가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억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감정은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느 날은 계획을 세우고 싶어 졌고,
어느 날은 다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느 날은, 몸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3월이 되자 나는 다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기는 ‘무너졌던 시간’이 아니라 내가 내 속도를 회복하고 있던 시간이었다.
모든 걸 잃은 것 같았던 그 시간에
실은 가장 중요한 걸 회복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때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냥 쉬게 두자. 쉬고 싶은가 보다.
어차피 나는 마음먹으면 할 사람이라는 걸 내가 제일 잘 알잖아.”